연재종료코너/안대찬세상만사

반전있는 스타일, 디오니소스

제주한라병원 2012. 11. 28. 09:47

<반전있는 스타일, 디오니소스 >

온갖 시련 이겨내고 12주신의 반열에 올라

 

매년 이맘때가 되면 프랑스로부터 반가운 선물이 도착한다.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그해에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든 ‘싱싱한 포도주’가 출시되기 때문인데 일컬어 <보졸레 누보>가 그것이다.


부르고뉴주의 보졸레 지역에서는 그해에 갓 생산된 포도주를 포도주통에서 바로 부어 마시는 전통이 있었는데, 1951년 이러한 전통을 지역 축제로 승화시키면서 프랑스 전역의 축제로 확대되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세계적인 포도주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 이 포도주를 주재하는 신이자, 축제를 대변하는 신, 젊음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신, 올림포스의 12신 중 유일하게 인간에게 태어난 신, 바로 디오니소스의 반전있는 스토리를 살펴보자. 디오니소스는 로마식으로는 바쿠스(Bacchus)라고도 불리고, 그가 주재하는 포도와 포도주는 생명력과 젊음을 상징한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둘인 자’ 즉 디오메토르(Diometor)라는 별칭이 있는데 죽음의 고비를 넘어선 탄생신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이자 인간 여인이었던 세멜레(Semele)사이에서 잉태되었다. 이를 눈치챈 제우스의 아내 헤라 여신은 세멜레의 유모였던 베로에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세멜레에게 “매일 변신해서 찾아오는 제우스가 과연 천상의 신이 맞는지 확신하느냐”고 묻습니다.


본래 제우TM는 밝음과 광명을 주재하는 신이고, 불벼락을 사용하는 신이기 때문에 인간이 제우스의 천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면 그 광채에 불타죽게 된다. 그래서 제우스는 세멜레에게 올 때마다 변신을 하고 찾아왔던 것이다. 영리한 헤라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헤라가 돌아간 후 고민하던 세멜레는 저녁이 되자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온 제우스에게 “부탁이 있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진 제우스는 경솔하게도 ‘맹세의 강’인 스틱스강에 걸고 “어떤 소원이든 들어 주겠다”고 덜컥 맹세한다. 그러나 이어 세멜레가 한 말은 제우스를 후회와 비탄에 빠지게 한다. 제우스에게 천상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청한 것이다. 이미 스틱스강에 걸고 한 맹세였기 때문에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천상의 모습을 나타냈고, 세멜레는 그 자리에서 제우스의 광채에 불타 죽고 만다.


이때 제우스는 세멜레에게서 채 6개월이 되지 않은 아이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고 꿰매는데, 그후 3개월이 지나 제우스의 허벅지로부터 탄생한 신이 바로 디오니소스다. ‘어머니가 둘인 자’라는 그의 별명은 여기서 생긴 것이다.


이처럼 디오니소스는 어머니 세멜레와 함께 죽을 수도 있었던 운명을 극복하고 이 세상에 탄생한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우스는 태어난 아기를 세멜레의 언니인 이노와 아타마스 부부에게 맡기지만 헤라의 보복으로 두 사람은 광인이 되어 죽고 만다. 다시 제우스는 전령 헤르메스를 시켜 디오니소스를 인도의 니사 산에 사는 님프들 손에서 자라게 한다. 그러면서 디오니소스는 실레노스로부터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배운다.


장성한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티레노이 해적들의 배를 얻어타게 되는데, 곧 해적들에 의해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갈 위기를 맞는다. 해적들이 그를 밧줄로 묶으려던 순간 디오니소스는 비로소 신으로서의 자신의 권능을 보이게 된다. 노를 뱀으로 변하게 하고 덩굴로 배를 뒤덮었으며, 포도넝쿨로 돛대를 휘어 감았다. 이때 놀란 해적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돌고래로 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돌고래가 종종 난파당한 선원들을 구해주는 이유가 해적들이 디오니소스에게 지은 죄를 뉘우치고 선행을 하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그후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비범함을 알아채고 음모에 반대했던 항법사 아코이테스와 함께 낙소스 섬으로 향했는데, 그곳이 디오니소스 신앙의 발원지가 된다.


한편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주어 미궁에서 탈출하게 도운 뒤 함께 낙소스 섬으로 갔다. 그러나 배은망덕한 테세우스는 그녀가 잠든 사이 몰래 혼자 귀국길에 오른다. 남겨진 아리아드네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아프로디테는 가엾게 여겨 인간 애인 대신 천상의 애인을 짝지어 주겠노라고 위로했다. 결국 신세를 한탄하고 있던 아리아드네를 발견한 디오니소스는 그녀에게 반하여 아내로 삼았다.


인생에는 고난의 시간이 있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디오니소스처럼 한 순간에 목숨을 빼앗길 만큼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고 인간으로서는 유일하게 12주신의 반열에 들어간 것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사에서 볼 수 있는 ‘반전있는 스타일’인 것처럼 세상 누구에게나 반전의 기회는 존재할 것이다.


포도가 해마다 열리고 새 포도주가 새 부대에 담기듯, 고난과 시련 속에 있는 모든 이마다 좌절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 것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