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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스토리의 신화 속 바이블, 에로스와 프시케

제주한라병원 2012. 10. 2. 09:47

역사 속 세상만사 - 러브스토리의 신화 속 바이블, 에로스와 프시케
굳건한 믿음을 토대로 시련을 함께 극복하는 것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심지어는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사회의 영원한 소재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이미 이러한 러브스토리의 바이블이 담겨있었다. 바로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아들로 사랑을 주재하는 신이다. 로마식 이름으로는 큐피도(Cupido)이고, 영어식으로는 큐피드라고 하며 ‘하트를 품은 화살을 당기는 토실토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사랑을 주재하는 만큼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을 지닌 에로스가 쏜 사랑의 화살 때문에 뒤엉켜버린 애정사건도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신 에로스가 정작 스스로 심한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는데 바로 프시케와의 사랑이다.


프시케는 어느 왕국의 셋째 공주였는데 인간으로서는 가지기 어려울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치다보니 어느 누구도 감히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를 골짜기 속 바위에 세워두면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는 신탁까지 내려졌다.


신탁대로 프시케는 깊은 골짜기 속 숨겨진 성에서 얼굴을 알 수 없는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은 늘 어둠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편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으면서 “만약 당신이 억지로 내 모습을 보려한다면 영원히 나를 잃게 되리라” 하고 경고했다. 참으로 기묘한 생활이었다. 낮 동안은 형체 없는 목소리들과 궁전에서 생활을 했고, 밤이 되면 자신을 찾아온 남편과 함께 지냈다. 그래도 자신을 돌봐주는 형체 없는 목소리들과,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에 프시케는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자신이 괴물의 아내가 된 줄로 잘못 알고 괴로워할 가족들 때문에 비탄에 빠지게 된다. 남편은 그녀의 근심을 덜어주려고 그녀의 언니들을 초청해도 좋다고 허락한다. 초대받은 언니들은 남편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프시케에게, 남편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불어넣었다. “남편 몰래 등잔을 비춰 꼭 남편의 얼굴을 확인해라”고 말이다.


프시케는 고심 끝에 미리 감춰둔 등잔을 꺼내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등잔불에 비춰진 그는 너무나 멋지고 잘생긴 모습의 에로스였다. 프시케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등잔을 든 손이 떨려 뜨거운 등잔기름 한 방울을 에로스의 어개에 떨어뜨렸고, 이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에로스는 경고대로 곧장 그녀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사랑의 전제는 믿음인데 프시케가 그것을 저버렸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사랑을 되찾기 위한 프시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에로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는 그녀에게 “세 가지 시험에 통과하면 에로스와 만나게 해주겠다”며 세 가지 미션을 제시한다.


첫째, 곳간에 흩어져 있는 곡식 낱알들을 종류별로 모아 다시 쌓을 것. 둘째,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황금색 양들의 털을 뽑아올 것. 셋째,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페르세포네 여신에게서 단장료(丹粧料, 화장품)를 얻어올 것. (서로 아름다움을 다투던 여신들에게 머리나 옷을 꾸미는데 필요한 단장료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인간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미션에 도전한 데에는 사실 에로스의 숨은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에로스는 비록 그녀 곁을 떠나긴 했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였다.


한편 아프로디테와 연적관계에 있던 지하세계 여신, 페르세포네는 이번이야말로 아프로디테에게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상자 안에 단장료 대신 ‘잠의 씨’를 넣어두었다. ‘잠의 씨’가 엄습하면 영원히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단장료가 든 줄 알고 상자를 지상으로 가지고 올라온 프시케는 이제 곧 에로스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만 상자를 열어보고 말았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에로스는 프시케가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그녀의 분신인 나비를 통해 듣고서는 곧장 달려가 깊은 잠에 빠진 그녀를 자신의 키스로 깨운다. 잠에서는 깨어났지만 프시케는 결국 아프로디테 여신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에로스와 프시케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바로 대신(大神)인 제우스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에로스는 올림포스로 찾아가 프시케와의 사랑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에로스의 진심과, 인간으로서 신의 미션에 도전한 프시케의 노력을 높이 사겠다”며,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던 아프로디테와의 화해의 자리를 적극 주선하고, 둘의 혼례잔치를 성대하게 열어주었다. 게다가 제우스가 프시케에게 불사(不死)하게 되는 신식(神食)을 선물함으로써 둘은 영원한 사랑을 이루게 되는데, 해피엔딩의 전통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며, 이후 수많은 러브스토리의 바이블로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미녀와 야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등 다양한 이야기가 은연중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해 정리해볼 수 있는 신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진정한 사랑의 조건을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사랑은 언제나 ‘믿음’을 기초로 하며, 그 믿음 위에서 성장한다. 둘째, 사랑은 시련을 함께 극복한다. 셋째, 완전한 사랑은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라 간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