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고 투박한 게 제주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2012/8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옹기
까칠하고 투박한 게 제주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사람은 흙을 통해 배운다. 흙과 함께 하면서 흙을 빚을 줄 알게 되고, 그런 삶 속에서 그릇을 등장시켰다. 한마디로 풀자면 흙으로 만든 최고의 상품은 그릇이었다. 그릇의 역사는 어떻게 하면 최고품의 자기(瓷器)를 만들어낼까라는 고민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어찌 보면 일반 민중과는 동떨어진 지배층이 역사였고, 욕심으로 채워진 인간의 역사였다.
고운 흙으로 만든 자기는 청자로, 백자로, 거기에다 아름다운 문양을 입히는 등 갖가지 꾸밈을 통해 자신만의 멋을 발산했으나 민중들이 쓰던 그릇들은 그렇지 못했다. 흔히 항아리로 대변되는 옹기가 그들이다. 까칠하고 투박한 질감,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색감, 모양새도 균일하지 못해 제각각이다. 정형이 전혀 없는 그들보고 누가 아름답다고 할까.
그러나 옹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었다. 특히 제주에서의 옹기 쓰임새는 삶과 떼어놓지 못했다. 뭍 지방에서야 자기·유기 등을 만드는 곳들이 있지만 제주는 아니었다. 제주 옹기는 제사상에도 올랐으며, 어부들의 그물추에도 쓰였다. 연적과 벼루 등 문방구류도, 심지어는 거름으로 쓸 오줌을 밭으로 나르는 오줌허벅도 옹기였다. 다른 지방 옹기들은 실외 저장용기로 한정됐지만 제주 옹기는 실·내외가 따로 없었다. 그렇듯 제주민에게는 친분하고 정겨운 물품이었다. 자기는 겉보기의 아름다움이지만 옹기는 아옹다옹 다투며 살아가는 민중들과 같이 했기에 제주사람을 닮았다.
옹기는 예전, 삶의 한 가운데를 차지했다지만 이젠 아니다. 점차 위치를 잃고 있다. 새마을운동을 전후로 은백색을 띠는 양은냄비와 스테인리스 그릇이 일반화되면서 옹기는 밀려났다. 더욱이 마당이 사라지는 주택구조는 더 이상 옹기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노랑굴 큰불떼기 장면.
이제 전통은 이어지지 않고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옹기도 명맥만 겨우 유지할뿐, 영속성을 기대하는 어렵다. 누군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건 시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건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옹기는 땅으로 돌아간다. 땅에서 태어난 그들은 다른 그릇들과 달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깨져 땅에 묻히더라도 자연상태인 흙이 된다. 옹기가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해왔음에도 그 파편 하나조차 찾기 힘든 이유는 흙이 되는 토화(土化)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토화는 빛을 내고,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자기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옹기만의 특징이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연을 택한다.
제주 옹기의 쓰임새가 실·내외를 넘나든 데는 자기를 만들 수 없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첫째었다. 우선 토질이 다르다. 자기를 생산하려면 고령토가 있어야 하지만 제주도에는 없다. 때문에 제주에서 자기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제주에서는 어떻게 그릇을 만들었을까. 뭍에서 수입을 해서는 그 많은 수량을 감당하지 못한다. 곽지에서 출토되는 무늬없는 토기 등을 만들었던 이들은 그 후손들에게 삶의 방식을 전수했다고 본다.
제주 옹기는 애초에 달랐다. 우선 흙이 다르다. 제주 흙은 점력이 뛰어나고 단단하다. 또한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유약을 바른 듯한 효과를 얻는 것도 제주 옹기만의 특징이다. 제주인들은 옹기를 구울 때 장작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잔가지를 이용해 돌가마에 불을 뗐다. 이것 역시 높은 온도를 만들 수 있었고, 자연발색이 이뤄지는 최고급의 옹기를 생산하게 된 제주인의 지혜였다.
다른 지역은 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자기를 만들 기본 재료가 없는 제주에서는 자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옹기를 만들어냈다. 청아한 소리가 나는 제주 옹기는 기법부터 차이가 난다.
옹기 제작은 대부분 새끼줄처럼 엮는 타래기법이지만 제주에서는 널빤지를 붙이듯 '판형기법'을 쓴다. 그런 판은 토림이라는 널따란 나무 위에서 만들어진다. 찰흙덩어리를 토림마깨로 두드린 뒤 커다란 판을 만든다. 그 판은 물레를 만나면서 옹기의 형체를 갖춰간다. 수래차와 조막으로 판의 안팎을 두드리면 불룩 배가 나온 옹기로 만들어진다.
옹기를 만드는데 갖가지 제작도구가 있다. 앞선 꺼낸 수래차·조막·토림마깨 등과 함께 아주 특이한 도구의 하나로 ?보로롱?이라 불리는 대나무칼이 있다. 보로롱은 밋밋한 옹기표면에 빗살무늬를 만드는 도구다. 빙빙 돌아가는 옹기표면에 갖다대기만 해도 자연스레 빗살무늬가 생긴다. 제주 옹기를 만드는 흙은 단단하기에 대나무칼이 옹기표면을 튕겨나오면서 빗살무늬가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옹기는 말리자마자 가마에 들어가지 않는다. 제주 옹기는 점력이 뛰어나기에 말리는데도 시일이 필요하다. 움집에서 숙성 건조시키는 과정만도 무려 10개월이나 걸린다. 그 뒤 움집에서 꺼내 돌가마로 들어간다.
그러나 제주 옹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산재해 있던 제주 특유의 돌가마도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옹기 제작은 분업을 통해 이뤄졌다. 모든 것을 섭렵한 굴대장, 불대장, 건애장들. 각기 맡은 일을 하며 옹기를 만들었으나 이젠 그들이 세상을 뜨면서 그들의 삶 속에 묻어난 제주문화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순박하고 자연적이면서, 우리의 아버지 얼굴을 닮은 제주 옹기의 중요성을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