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신흥리 ‘오탑’-매혹이 넘치는 그 바다엔 민중의 아픔이 서려 있네

제주한라병원 2012. 8. 6. 09:44

2012년/7월

<신흥리 ‘오탑’>

매혹이 넘치는 그 바다엔 민중의 아픔이 서려 있네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엔 가슴 아픈 전설이 흐른다. 이 곳 노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신흥리의 이야기를 가슴속 깊은 곳에서 꺼내줬다. 현용준이 펴낸 「제주도 전설」에도, 신흥리 마을지에도 없는 옛 이야기다.


신흥마을이 생긴 뒤다. 이 곳은 예전부터 왜구들이 들락날락했던 곳이다. 오죽하면 신흥리의 옛 이름이 왜포(倭浦)일까. 주민들은 풍족하지 못한 삶 때문에 바다에 나가 파래, 톳 등을 캐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날 한 왜인이 ‘멜을 거리러’(멸치를 뜨러) 왔다가 박씨를 겁탈하려하자 박씨는 도망쳐오다 볼래낭 밑에서 죽고 만다.


주민들은 박씨를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어 모시고 있다. 그 곳이 볼래낭할망당이다. 박씨는 아기를 낳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기에 주민들은 박씨할아버지를 양자로 들여 신흥동산밭에 하르방당도 세운다.


전설은 사실이라고 믿는 점을 가장 주요한 요소로 삼는다. 볼래낭할망당에는 신흥이 주민들, 곧 민중이 사실이라고 믿는 전설의 개념이 녹아 있다. 그런 걸 사실이라고 한 번 믿고 신흥리로 가보자. 그 곳을 밟으면 전설보다 더 멋진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스쳐가는 곳으로만 안다면 오산이다. 방사탑이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나,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내는 모래사장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바다에 둥둥 뜬 방사탑

어떤 미국인이 하늘 위에서 신흥리를 봤다. 그 미국인은 마을 전체를 사겠다고 할 정도로 신흥리는 매혹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현재는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애초의 모습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신흥 바닷가는 U자 형태다. U자의 움푹 들어간 곳을 신흥 사람들은 큰개라고 부른다. 이 곳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건 방사탑이다. U자의 시작점과 끝점에 방사탑 각각 1기가 있으며, 움푹 들어간 곳에 방사탑 3기가 있다. 특히 큰개 안에 있는 방사탑 3기는 바닷물의 듦과 나감에 따라 느낌을 달리 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뭍의 여느 방사탑과 다름없지만 바닷물이 들어차 방사탑을 반쯤 삼키면 영락없는 섬이 되고 만다. 물때를 잘 골라 찾아간다면 서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2번은 들러야 제 멋을 알 수 있다.


옛 어른들은 이 곳 방사탑이 5기여서 ?오탑?이라고 불렀다. 현재 U자의 시작점에 있는 오다리탑(오래탑)과 큰개 안에 있는 큰개탑(생이탑)은 예전 그대로이며, 나머지 3기는 최근 세워졌다.


방사탑을 세운 이유는 이 곳 바닷가가 게의 집게 형상이어서 물지 못하도록 탑을 쌓아서 막았다고 한다. 풍수지리로 세워진 탑이 이젠 여행객들의 발을 묶어놓는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 들러볼 만하다. 물이 빠지면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며, 모래밭에서 형형색색의 조개를 줍는 재미가 일품이다.

 

 

 

땅끝과 가장 가까운 관곶

시인 허형만은 '파도를 보면 내 안에 불이 붙는다'고 읊었다. 대체 어떤 기분일까. 관곶으로 가보라.


오다리탑이 있는 오다리코지에서 서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환해장성이 눈에 띈다. 포장길이 끝나는 지점은 ?제주의 울돌목?이라 불릴 정도로 물살이 센 관곶이다. 조천관 시대에 생긴 지명으로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어서 관곶이라 부른다. 관곶은 독사머리처럼 불쑥 솟아나 있으며, 제주에서는 해남 땅끝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은 지나가던 배도 뒤집어질 정도로 파도가 거센 곳이다. 이 곳의 거센 물살을 바라보면 시인이 말한 내 몸에 불이 붙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해안도로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반대로 많은 것들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신흥리의 큰 포구도 이 때문에 사라졌다. 볼래낭할망당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이 곳 주민들이 '엉알'이라고 부르는 곳이 나온다. 30~40톤에 달하는 배도 이 곳에 댔으며, 전남 강진에서 옹기를 실은 배가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해안도로 개통으로 계곡을 방불케하던 옛 포구는 영원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