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중세건축물이 아름다운 항구도시, 라트비아 리가
2012년/5월
라트비아 리가
13세기 중세건축물이 아름다운 항구도시
▲ 다우가바 강이 도시 한가운데 가로지고, 울긋불긋한 중세의 건축물들이 인상적인 리가.
라트비아의 수도이자 발트 해에 접해 있는 리가는 발트 3국에서 가장 큰 도시 규모를 자랑한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가 붉은 색의 이미지라면 리가는 푸른 남색이라 할 수 있을 만큼과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항구도시다. 과거 리가는 '동유럽의 파리', '구소련의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불리며 유흥과 환락의 도시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중세시대 한자동맹 거점도시로 성장하면서 리가에는 해외에서 들어온 상인과 뱃사람들이 오가며 흥청망청 뿌린 돈으로 도시가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종교적 향기가 가득한 빌뉴스와 달리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이 화려한 도시를 치장하고 있는 리가는 분명 자유와 낭만이 넘쳐나는 도시다. 그 당시 리가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발트 해 이웃 국가인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리가의 보드카 공장이나 담배공장으로 돈 벌러 왔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리가의 첫인상은 에스토니아의 탈린이나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보다 세련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넘쳐난다.
다우가바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리가는 고딕양식의 건물과 현대풍의 고층빌딩이 독특하게 어우러져 북유럽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건축 박물관처럼 여겨져 해마다 수많은 학자와 관광객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가의 진면목을 보려고 이곳을 찾는다. 리가에 처음 도시를 세운 사람은 불행하게도 이곳의 현지인들이 아닌 독일 브레멘에서 온 알베르트 대주교였다. 1201년 알베르트 대주교가 현재 리가 지역에 상륙하여 이 지역을 무역거점도시로 건설하면서 리가가 세계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 지역은 '라트비아'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베르트 대주교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를 통합하여 새로운 독일 영토, 리보니아를 건설하였다. 그 중심에 바로 리가가 있었다. 하지만 대주교가 리보니아를 건설했지만 그 이전에 리가에는 원주민들이 살았다. 이 원주민들은 어업과 목축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았는데 독일 출신의 알베르트 대주교가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이들의 모습은 그들에 의해서 가려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1년 리가에서 '리가 800주년'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알베르트 대주교의 동상을 세우려고 했지만 리가 사람들은 알베르트를 도시 건설자가 아닌 침략자로 규정하고 그의 동상 대신 중세 상인들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롤란드 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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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색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리가의 구시가지. |
리가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피터 대성당. |
13~18세기에 축조된 방어벽을 포함하는 구시가지는 다우가바 강의 오른쪽 둑에 위치하고 있다. 1997년, 리가 구시가지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중요성으로 인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세 시대의 기품을 간직한 리가 구시가지에 첫 발을 디디면 제일 먼저 이 도시의 터줏대감인 돔 성당과 성 피터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우선 아스라한 옛 영광을 간직한 돔 성당은 독일인들이 이 땅에 와서 최초로 지은 성당으로 13세기 초에 리보니아 지역을 관할한 알베르트 대주교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발트에 있는 성당 중에는 가장 규모가 크고, 성당 안에 있는 오르간은 유럽 최대라고 한다. 시대를 달리하여 수많은 개․보수공사 때문에 돔 성당의 건축양식은 복합적으로 건축된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돔 성당 광장은 리가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광장 중 하나로 노천카페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아기자기한 노천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 마시고 나면 리가의 풍요로움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붉은 빛을 토해내는 돔 성당을 우측으로 끼고 구시가지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이 123m의 첨탑을 가진 피터 대성당이 눈앞에 나타난다. 1209년에 건축된 성당으로 가톨릭 성당, 루터 교회, 박물관 등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그 기능이 역할을 달리하였다. 원래 이 성당은 목재로 만든 탑이 아주 유명했지만 화재로 소실되어 최근에 금속 재질로 복원되었다. 무엇보다 높은 첨탑은 건축될 당시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탑이었을 만큼 리가의 부를 상징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 꼭대기에 오르면 발아래로 다우가바 강과 강을 중심으로 건설된 아름다운 리가의 구시가지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피터 교회 바로 앞에는 리가를 대표하는 상인들의 건물, 검은 머리전당이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다. 1344년 이래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검은머리전당은 리가의 보물급 건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에는 이곳에서 발트 해를 여행하는 여행자나 길드의 무역 상인들이 머물며 회의를 가졌던 고급 호텔로 사용되었다. 700여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검은머리전당은 르네상스 풍의 건축양식과 고딕 양식 그리고 로코코 양식이 가미되면서 건물의 화려함을 더했다. 불행하게도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으로 건물이 거의 파괴되었고, 건물의 잔해들은 구소련에 의해 비밀리에 없어졌다. 하지만 리가 시민들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과거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2001년 완벽하게 복원하였다. 현재는 관광안내소, 콘서트 홀, 검은 머리 길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리가 구시가지는 중세시대 무역거점도시로 성장하면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주옥같은 건축물을 지었다. 발트 해에서 가장 큰 도시답게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리가. 일생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그런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 높이 123m의 성당 탑에 오르면 발아래로 리가 시가지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 가는 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보통 핀란드 헬싱키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경유해서 리가까지 갈 수 있다. 헬싱키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핀 에어와 대한항공을 이용하면 직항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