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해의 보석, 탈린
2012년/4월
발트 해의 보석, 탈린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탈린의 구시가지 전경.
'덴마크 사람들이 세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탈린은 아름다운 발트 해를 끼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중세시대의 고색창연함이 곰삭은 탈린은 유럽에서도 또 다른 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다. 1710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 때부터 구소련까지 두터운 장벽 속에 가려졌던 탈린은 1991년에 독립한 뒤, 발트 해의 진정한 보석으로 거듭나고 있는 항구도시다. 우리에게는 '탈린'과 '에스토니아'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지중해만큼 눈부신 발트 해가 있어 탈린은 더 이상 유럽 속에 변방도시는 아니다. 무엇보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조사가 많고,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우랄알타이어와 비슷한 점이 왠지 에스토니아 민족이 친근하게 다가선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이곳에 핀우그르족이 살기 시작했고, AD 10~11세기에 요새화된 정착지가 이곳에 있었으며, 12세기에 도시가 세워졌다. 그 후 독일 브레멘의 대주교 알베르트 공이 덴마크의 왕 발데마르와 손을 잡고 1219년에 현재 탈린 자리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후 탈린은 13세기 독일 한자 동맹에 가입하면서 경제적인 발전을 바탕으로 15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346년 덴마크가 십자군인 튜튼 기사단에게 은 4.5톤에 탈린을 팔았고, 16세기 들어 튜튼 기사단이 해체되면서 스웨덴이 탈린을 지배했다.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 독일 등 유럽의 대강국에 의해 침략과 지배를 숱하게 받았지만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특유의 끈기와 저항정신으로 자신의 나라와 아름다운 도시, 탈린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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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파란 하늘아래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한 탈린 구시가지 광장. |
에스토니아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는 루터 교회 내부 전경. |
에스토니아 건국 신화인 크로이츠발드가 쓴 '칼렙의 아들'에 따르면 "에스토니아를 건국한 거인 칼렙의 아내 린다는 남편이 죽자 그의 무덤을 표시해 두기 위해 엄청나게 무거운 돌을 산 위로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가는 도중 돌이 갑자기 무거워져 바닷가 근체에 떨어뜨렸다. 그 돌이 떨어진 자리가 바로 탈린의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서 있는 톰페아 언덕이 되었고, 아내는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흘린 눈물이 고여 윌레미스테 호수가 되었다" 전설같은 신화이지만 현재 탈린에는 톰페아 언덕과 눈물이 고여 만들어진 윌레미스테 호수가 존재한다. 높은 산이 없는 탈린에서 높이 30미터의 톰페아 언덕은 마치 산처럼 느껴진다. 해안가 석회암 절벽에 위치한 톰페아 언덕은 '최고봉'이라는 뜻으로 폭 400m, 길이 250m로 탈린에서 고지대에 속한다.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성과 성벽이 건설되었다. 성곽은 두께 3m, 높이 15m로 도시를 감싸며 4km나 뻗어 있고 성곽에는 붉은빛 원뿔 모양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탑이 46개 세워졌으나 현재는 1.85km의 성벽에 26개의 타워만 남아있다.
탈린 여행의 시작점인 톰페아 언덕.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아르누보 양식으로 20세기에 세워진 국회의사당과 장엄한 돔 천장이 인상적인 알렉산더 넵스키 러시아 정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두 건물 사이로 난 투박한 박석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탈린 시민들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인 루터 교회에 이른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루터 교회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이․취임식이 열릴 만큼 탈린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곳이다. 루터 교회를 뒤로하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중세풍의 우아한 분위기를 간직한 구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전망대에 서면 회색 성벽과 탑 그리고 녹색 숲과 어우러져 고풍스럽고 특별한 분위기가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붉은 지붕과 뾰족한 구시청사의 첨탑 그리고 은빛으로 물든 발트 해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 탈린 시내를 보고 있노라면 왜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이자 ‘발트 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를 금방 깨닫게 된다. 좀처럼 사람들은 전망대에서 구시가지로 발길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발트 해에서 불어오는 말간 바람 몇 줌과 울긋불긋한 구시가지 지붕들이 빚어내는 시각적인 소나타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전망대에서 서성거리다 마침내 성곽 밖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내려가면 튜튼 기사단의 십자군들이 세운 아름다운 구시가지 광장과 중세풍의 건축물과 만나게 된다. 톰페아 언덕에서 본 탈린의 이미지와 달리 구시가지 심장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중세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 온 것처럼 느껴진다. 한자동맹으로 도시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탈린은 공공건축물, 교회, 상인들이 상주했던 건물 등 화려한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울퉁불퉁한 박석이 깔린 구시가지 광장에는 북유럽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고딕양식의 구시청사 건물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다. 1400년 대 초반에 지어진 이 건물은 불로초를 먹은 것처럼 60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청사 주변으로는 15~17세기에 지어진 파스텔 톤의 건축물들이 어깨를 서로 맞대고 있다.
여름철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크고 작은 콘서트가 열리고, 수공예품 전시장,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바자르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언제나 이곳은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겨울철이면 1441년부터 내려온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중세 시대 카니발을 재현한 ‘구시가지의 날’ 행사가 열려 중세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가는 길=발트3국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대한항공에서 인천~상트페테르부르크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9시간30분. 탈린까지는 자동차로 7~8시간(국경 통과 시간 포함) 소요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스토니아로 국경을 통과할 때 반드시 여행자보험 증명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