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너머 희망의 꽃을 피운 케이프타운
2012년/2월
무지개의 너머 희망의 꽃을 피운 케이프타운
▲ 남아공의 상징인 테이블 마운틴 정상.
2010년 6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아주 특별한 날을 맞이했다. 그 이유는 지구촌이 하나 되는 세계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렸기 때문이다. 6년 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마치 50세 청년처럼 느껴진다. 승리의 기쁨을 다른 경쟁국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더 이상 남아공은 어두운 그림자가 깃든 나라가 아니라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개발도상국으로서 자리매김을 확실하게 하였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다양한 인종과 종족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억압과 투쟁이라는 혼돈 속에서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갖고 사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볼 때 남아공은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포르투갈 등 백인 우월주의 사로잡힌 제국주의의 횡포에 순수한 영혼들이 붉은 피를 토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나라들이 독립과 해방을 맞이했지만 남아공만큼 철저하게 백인들에 의해 원주민들이 인권적으로 탄압을 받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20세기 최악의 법으로 손꼽히는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아프리칸스어로 ’인종격리‘라는 뜻함)’는 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에게서 거주와 이동의 자유까지 박탈하며, 보이지 않는 인종간의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희망,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등 많은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로 더 이상 남아공에서는 인종차별정책이 헌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인종간의 대립과 갈등보다는 상생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논리가 남아공 앞에 놓여 진 숙제가 되었다. 현재까지 남아공은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 그리고 풍습 때문에 종족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정치사회의 불안, 굶주림, AIDS, 민족갈등 등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기본 생존권마저 존중받지 못 한 남아공은 글로벌화 된 21세기의 보편적 가치와 너무 동떨어져 살고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남아공의 정신적 지주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인종차별정책이 폐지 된 후 자신의 나라를 ‘무지개의 나라’로 말하면서 “많은 인종과 종족들이 이제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에서 벗어나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나라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2010년 세계의 축제인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맹주로 나서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
| |
남아공은 원주민 이외에도 동양에서 건너온 무슬림도 많이 산다. |
용감하고 사냥술이 뛰어난 줄루족 |
투투 대주교의 말처럼 무지개의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는 남아공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케이프타운이다. 하얀 색
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을 빠져나오면 과거 어두운 역사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잘 정돈된 유럽이나 호주 같은 분위기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기존의 이미지는 종교분쟁과 민족갈등으로 크고 작은 내전이 끊이지 않는 살육의 전쟁터, 동물의 원초적인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있는 그런 도시였다. 하지만 케이프타운은 백인들에 의해 모든 것이 개발됐기 때문에 아프리카라는 이미지보다 아프리카에 있는 유럽인들의 휴양도시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남아공 전체를 다 본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입법 수도인 케이프타운은 다이내믹한 삶과 낭만적인 모습이 늘 도시를 활기차게 만든다. 더욱이 월드컵을 통해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케이프타운은 테이블 만(灣)을 굽어보는 정상부분이 편편한 산에 둘러싸여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풍부한 이곳의 매력은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문명이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저 활동에서부터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구금되었던 로벤 섬까지, 케이프타운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명소들이 수없이 많다. 1960년대 백인지구에 흡수된 흑인 거주 지역에는 6개 박물관 지구가 들어서 있고,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과 이슬람 사원이 조화로운 보캅 지구, 그리고 현란한 밤 문화와 쇼핑, 분위기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해안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케이프타운의 명소들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테이블 마운틴과 희망봉이다. 케이프타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테이블 마운틴은 높이 1087m로 도심 남쪽에 있는 산이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산의 정상이 탁자처럼 평평하기 때문에 항상 구름에 덮여져 신비로운 이미지를 연출한다. 거대한 사암과 점판암으로 이뤄진 테이블 마운틴은 케이프 반도의 북쪽 끝에 솟아 있고 바로 옆 동쪽으로는 높이 1001m의 악마의 봉우리가, 서쪽으로는 높이 669m의 사자머리가 인접해 있다. 이곳에 서면 발 아래로 케이프타운과 케이프 반도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도시의 이미지는 아프리카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쉴 새 없이 흐르는 사람의 물결은 케이프타운을 남아공에서 가장 빛나는 관광 도시로 성장시켰다. 이제는 이 도시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이곳을 찾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케이블카를 타고 영원히 파란 하늘빛과 구름이 늘 머무는 테이블마운틴의 비경을 감상한다. 만약 구름이 아닌 시원한 바람과 푸른 파도가 머무는 장소를 원한다면 케이프타운이 숨겨 놓은 희망봉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테이블마운틴보다 세계적으로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희망봉은 말 그대로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장소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그는 1488년 포르투갈 주왕 2세의 명령으로 새로운 항해 개척에 나섰다가 지금의 희망봉을 발견했다. 원래 디아스가 발견할 당시 이곳의 이름은 `폭풍의 곶`으로 불렸다. 그 후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을 통과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뒤 주앙 2세가 `희망의 곶`이라 명명하면서 오늘날의 희망봉이 탄생했다. 희망봉 일대는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돼 비비, 타조, 물개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이 한 편의 시처럼 어우러지는 케이프타운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정면으로 맞서면 모세혈관에 퍼져있는 모든 감성의 세포들이 영원히 아름다운 이 도시를 기억하게 된다.
▲ 어릴 적부터 창과 활 사용법을 배우는 줄루족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