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알프스의 신비로운 바람이 머무는 도시 루체른

제주한라병원 2012. 7. 9. 09:20

2012년/1월

알프스의 신비로운 바람이 머무는 도시, 루체른

 

 

호수와 알프스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루체른.

중세의 우아한 기품과 자연이 선사한 아름다운 천혜 환경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도시, 루체른. 일생에 한 번이라도 스위스 여행을 꿈꾸는 자에게 루체른은 반드시 방문하게 되는 도시다. 바그너의 오페라 한 편이 그려질 만큼 자연의 풍요로움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일찍이 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어 다양한 작품을 통해 루체른을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독일이 낳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는 1850년대 루체른에서 6년간 머물며 주옥같은 작품과 음악적 감성을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눈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다 같은 루체른 호수(공식 이름은 피어발트슈테터호)와 필라투스, 리기, 티틀리스 등 높고 험준한 알프스산맥이 도시를 따스하게 감싸고 있어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게 한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로이스강을 중심으로 발달된 루체른은 명성에 비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중세의 분위기와 우아한 옛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는 루체른은 스위스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도시라는 명성을 100년도 넘게 유지해 왔다. 물 위에 아른 거리는 새하얀 만년설과 시민의 넉넉한 인심을 대하고 나면 도시에 대한 매력에 한 층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말간 알프스의 정기가 1년 내내 머무는 루체른은 840년 '루시아리아'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그 이름은 730년경에 세워진 베네딕트회 수도원인 성 레오데가르 수도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곳은 로이스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작은 어촌 도시로 시작해 1178년에 자치시로 인가를 받았고, 1230년에 생고타르 고갯길과 수로가 개통되면서 라인강 상류와 롬바르드 지방 사이의 중요한 교역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291년 도시는 합스부르크 왕조 손에 넘어갔으나 1332년에 연합동맹에 합병됐다. 1789년, 나폴레옹 군대가 스위스 전역을 정복했을 때 루체른은 잠시 헬베티아공화국(스위스)의 수도로 지정됐다.

 

 

1333년 세워진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루체른의 랜드마트

목조 다리이다. 

로젠카르트가 기증한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과 사진가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이

찍은 피카소사진 200여점이 전시된 피카소 박물관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곳 중 하나인 루체른은 호수와 로이스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차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이 도시와 삶의 역사를 함께한 카펠 다리를 비롯해 14세기 도시 성벽 무제크,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골목길, 중세ㆍ르네상스ㆍ바로크풍의 집들이 있는 광장들이 여행자의 발길을 유혹한다. 그중에서도 이 도시의 문화 아이콘이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 카펠교는 도시의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물론 화재로 인해 손실된 일부분이 재건축되긴 했지만 7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리 모양도 특이하게 로이스강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다리 내부에는 도시의 역사와 수호 성인을 그려넣은 112점의 판화가 있고 다리 중간에는 과거에 루체른을 지키는 요새이자 보물과 물품보관소였던 팔각형 급수탑인 바서투름이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 다리 주변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아마 이 도시를 찾아온 여행자라면 카펠교를 한 번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다리가 가진 의미는 단순히 강을 건너는 교량보다는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는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다리 주변에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과 잠시 여행의 쉼표를 찍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이런 모습이 아마 바그너에게 많은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바그너의 아름다운 선율을 되새기며 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알프스산으로 한발짝 다가서는 것도 좋다. 루체른에 오면 도시를 한눈에 감상하고, 알프스의 말간 정기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산악열차를 타고 산에 오른다.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산(1801m), 1년 내내 만년설과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티틀리스산(3020m), '악마의 산', '용의 산'이라 불리는 필라투스산(2132m) 등 루체른을 둘러싼 여러 개 산은 제각각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 중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필라투스는 알프스산의 풀밭과 숲을 지나 해발 1350m의 앰지겐역을 거쳐 주변의 바위가 흔들거리는 마탈프를 지나 네 개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 해발 2070m의 빌라도 쿤름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1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해발 2132m의 에젤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루체른에서 가장 높지는 않지만 정중앙에 있는 봉우리가 바로 빌라도산이고 그곳에 서서 바라보면 알프스산은 물론이고 산티스에스부터 브룸리잘프, 루체른, 추크, 그리고 스위스 고원들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사람의 눈과 마음은 어느새 알프스의 정기로 물들어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을 하는 순간 알프스가 빚어내는 자연의 신비감을 훼손시킬 것 같아 한참 동안 그냥 바라보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

 

건물의 벽화 등 중세 풍의 이미지를 간직한 루체른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