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 년의 도시 베른 & 프리부르

제주한라병원 2012. 7. 6. 13:15

2010년/12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 년의 도시 베른 & 프리부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가고 싶은 나라로 손꼽히는 스위스. 알프스와 어우러진 자연 풍광이 한 폭의 수채화를 옮겨 놓은 듯 이곳은 여행자들이 꿈꾸는 그런 나라다.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공기와 푸른 하늘빛을 담아내는 맑은 호수들이 끝없이 펼쳐진 스위스 여행은 도시 생활에 찌든 우리들에게 샹그릴라와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 스위스가 가진 매력은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 800만 명의 스위스는 북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언어도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현실 때문인지 스위스는 도시마다 매우 색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스위스의 수도이자 프로테스탄트들의 고향인 베른과 프랑스풍의 도시 프리부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우선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은 아레 강이 도시 중심부를 휘돌아나가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건물들은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곰’이라는 뜻의 베른은 1191년 도시 건설자로 유명한 체링겐가의 베르톨트 5세에 의해 군사적인 요새로 건설됐다. 13세기 초 자유도시로 성장한 베른은 나폴레옹에게 정복돼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적도 있지만, 1848년에 스위스의 수도가 되면서 지금까지 옛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스위스 한복판에 자리한 베른은 인구 15만의 작은 전원도시이지만 루소, 아인슈타인, 헤르만 헤세 등이 머물며 많은 역사적 자취를 남긴 곳이다. 고전적인 예스러움을 한껏 뽐내는 구시가지는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시 전체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다. 천 년 고도인 우리의 경주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베른 중앙역에서 구시가지 중심부로 들어서면 유럽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시계탑, 11개의 독특한 분수 등 중세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미정원에 서면 발 아래로 아레 강과 스위스 최대 성당인 베른 대성당이 힘찬 위상을 뽐낸다. 세월의 흐름만큼 건축물에서는 진한 중세의 향기가 배어난다. 좀 더 베른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이 도시의 중심인 슈피탈 거리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슈피탈 거리로 들어서면 베른이 가진 고색창연함을 눈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슈피탈 거리의 특징은 울퉁불퉁한 도로를 따라 덜컹거리는 전차들이 좁은 골목길을 마구 누비는 모습에서 낭만적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전차를 타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이 도시의 자랑거리인 11개 분수는 빼놓지 말고 봐야할 명소이다. 한 겨울에도 얼지 않고 힘차게 솟아나는 분수들은 베른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백파이프 연주자의 분수, 베른의 영광을 그린 ‘사자의 분수’, 그리고 이 도시를 만든 체링겐 가문의 베르톨트 5세가 투구를 쓰고 곰과 함께 있는 분수 등이 중세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을 등지고 슈피탈 거리에서 버스로 20분만 가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이지만 중세도시의 고풍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또 다른 중세도시 프리부르를 만나게 된다. 베른보다 34년이나 앞선 1157년에 체링겐가의 베르톨트 4세가 세운 천년 도시 프리부르는 스위스 중앙고지에서 흘러내리는 사린 강을 끼고 제법 가파른 언덕 위에 철옹성처럼 지어진 요새 도시다. 체링겐가는 아레 강과 사린 강 근처에서 자신들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했다. 베른과 도시 모양이 비슷한 프리부르는 스위스 가톨릭 중심지로서 종교 도시다. 또한 베른이 독일 문화권이라면 프리부르에는 프랑스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고 주민 대부분이 프랑스계다. 그래서 프리부르는 인구가 4만 명밖에 되지 않지만 베른보다 역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풍긴다. 중앙역에서 언덕을 내려가 구시가지로 들어가면 13세기에 지어진 목조다리, 성모리스성당, 성 니콜라스성당, 그리고 세월이 먼지를 뒤집어쓴 시청사 등이 중세 이미지를 한껏 뽐낸다. 특히 중세 기품과 종교적인 향기가 자욱한 성 니콜라스성당은 프리부르의 종교 아이콘이다.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지어진 성 니콜라스대성당은 프리부르 시청사 동쪽에 위치해 있다. 성당 앞쪽에는 높이 76m짜리 탑이 서 있고 출입구 위에는 14~15세기에 제작된 사제들 조각상이 설치돼 있으며, 14세기에 만들어진 남쪽 문에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수백 년 묵은 종교 향기가 우리 마음을 적시고, 기품 있는 중세 독서대, 세례반(1498), 성가대석과 일반석 사이 칸막이(1474), 성가단(15세기, 앙투안 페네 작품)과 조세프 드 메호퍼가 제작한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 알로이 무저가 제작한 오르간 등이 중세 박물관을 연상하게 한다. 프리부르 구시가지 한복판에 자리한 시청사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1501~1522년에 질리안 펠더와 한스 펠더 형제가 지은 시청사는 프리부르 역사와 삶의 궤적을 함께한다. 시청사 출입구에는 아치 모양 띠 장식이 눈길을 끌고, 내부에는 루이 16세 스타일 장식과 후기 고딕 양식 창문이 시청사를 아름다운 중세 건축물로 빛나게 한다.


그러나 프리부르 여행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도시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을 올라야한다. 구시가지 맞은편에 위치한 언덕길을 20여 분 오르면 발 아래로 프리부르의 전경이 펼쳐진다.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도시를 향해 쏟아지는 모습과 수백 년이 지난 건축물에서 뿜어져 나는 세월의 깊이가 추운 겨울을 더욱 아름답게 빛낸다. 함박눈이 소복하게 도시를 완전히 감싸면 프리부르의 진정한 겨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다. 비록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 도시 사람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된다. 스위스 속에서 만나는 작은 프랑스와 같은 프리부르에 머무는 동안 여행자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중세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