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음악 향기에 휘감긴 오스트리아 빈
2010년 / 4월
그윽한 음악 향기에 휘감긴 오스트리아 빈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쉔부른 궁전의 전경.
파리의 몽마르트르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영원한 안식처라면 오스트리아 빈은 클래식 작곡가들의 예술적 향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음악을 위해 존재한 빈은 과거에는 합스부르크 왕국의 수도였고,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5개의 묘지를 한데 모아 만든 중앙묘지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바로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예술적 영혼과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 출신의 모차르트, 독일 본 출신의 베토벤, 그리고 빈 근처에서 태어난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 등 이름만 나열하여도 빈이 얼마만한 음악적 열정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는가를 금새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위대한 음악가들이 머물렀고 이곳에서 평생 동안 아름다운 선율과 시름하다 생을 마쳤기 때문에 빈이 음악의 도시로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빈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여행하는 동안 시민들의 생활이 아름다운 음악과 얼마나 깊이 관계를 맺고 있는지 곧 깨닫게 된다. 얇은 커튼 사이로 퍼져 나오는 상큼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코끝이 불끈 달아오르는 커피 한 잔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모습은 빈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아침 풍경이다. 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영화처럼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멋진 정장을 입고 있어 항상 이 복장으로 근무하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저녁에 가족과 함께 오페라 구경을 가기 때문이다.”라고 넉넉한 웃음과 함께 짧게 대답을 하였다. 빈 시민들이 음악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조금 지나치게 표현한다면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시민들의 웃음소리 등 빈의 모든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가 떠오른다. 그래서 빈뿐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작은 공연들을 볼 수 있어 잠깐일지언정 삶이 풍요로워진다.
싱그러운 선율이 맑은 하늘 위를 떠다니는 빈은 오스트리아 동부 도나우 강 상류 연안에 사뿐히 내려앉은 유럽의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이다. 가로변에 줄지어 선 마로니에가 아름다운 거리를 휘감고 수백 년 묵은 돌길에서 진한 커피 향기가 묻어난다. 영어로 비엔나Vienna라고 불리며 우리에게 ‘비엔나 커피’로 더 유명한 빈은 정말 음악의 도시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고풍스런 건물들과 어우러진 노천 카페에 앉아 익숙한 음악에 발을 맞추고, 향기로운 아이슈펜너 커피(비엔나 커피)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빈을 하루나 이틀 만에 둘러보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은 고상하고 우아한 클래식 음악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빈의 중앙묘지에 묻혀 있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자취만 둘러봐도 이곳이 얼마나 음악적인 도시인지 느낄 수 있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 등 거장들이 빈을 음악의 도시로 만들었지만 16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빈의 명성을 더욱더 드높였다. 특정한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여자를 단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보수적인 음악만을 고집하는 빈 필하모닉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이다. 빈 필하모닉은 1842년 궁정 지휘자 오토 니콜라이에 의해 창단된 후 한스 리히터,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브루노 발터,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 거장들이 지휘자로 있었기 때문에 연주 솜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다.
▲ 시청사 앞 잔디밭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빈 필하모닉은 백 년 넘게 한결 같이 높은 수준과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휘자의 역량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고 악단 자체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는 것이 아주 큰 특징이다. 보통 오케스트라에는 상임 지휘자가 있어 그의 역량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색깔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빈 필하모닉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된 지휘자를 두지 않기 때문에 큰 공연을 앞두고 그때그때마다 명성이 높은 세계 정상급의 객원 지휘자를 초빙한다. 빈 필하모닉이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는 것 외에도 단원들을 엄격하게 선발한다는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136명의 단원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빈 출신이라는 점이 빈 필하모닉이 추구하는 순수성과 정통성에 부합하고 있다. 철저하게 빈 시민으로서 빈에서 음악 교육을 받은 연주자를 최우선으로 선발하여 음악의 순수성을 고집하기 때문에 빈 필하모닉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다른 필하모닉과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중세의 귀족적인 기품이 스민 빈. |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가 있는 쉔부른 궁전. |
숲과 분수 그리고 꽃밭이 인상적인 쉔부른 궁전. |
이처럼 강한 카리스마와 높은 연주 솜씨를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여행하는 동안 직접 들어보지는 못하였다.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빈 필하모닉의 그림자도 못 보고 다만 빈에서 옛 거장들의 자취들만 좇아다니는 데 급급하였다. 빈에는 모차르트가 고향을 떠나 빈으로 이사를 온 뒤 그 유명한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 집이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배낭 안 CD플레이어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그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감정의 사치가 그날따라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다. 이리저리 발길 닿는 데로 구름처럼 빈을 배회하다 도착한 곳이 녹색 나무에서 쏟아 내는 테르펜terpene 향기 속에 파묻힌 베토벤 하우스이다. 시내에서 약 20분가량 떨어진 이곳은 크기가 빈의 3배가 넘는 엄청나게 큰 녹색 숲이다. 독일 본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사를 온 베토벤이 제 6번 교향곡 〈전원〉의 악상을 떠올린 곳이라 베토벤을 사랑하는 팬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짙은 녹색 숲 사이에 하얀 색 3층 건물이 바로 악성 베토벤이 몇 개월 간 머물다 간 집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베토벤은 귀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사람들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 32세의 젊은 나이로 유서를 쓰고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한 채 베토벤은 작곡에만 몰두하였다. 베토벤은 빈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별난 성격 때문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이사를 자주 다녔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2층에 있는 피아노는 그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주인을 잃어 버려서인지 외롭게 홀로 창문만 내려다보고 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흑백의 건반을 절대로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빈의 거리를 헤매다 보면 음악과 관련된 건물이나 많은 음악가의 동상들과 만나게 된다. 빈의 상징으로 불리는 국립 오페라극장, 빈 시민들의 휴식처인 시립공원 등등 가는 곳곳마다 음악과 음악가의 채취들로 둘러싸인 빈이야말로 정말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한다. 각기 다른 색깔과 모습으로 독특한 자기만의 소리를 내지만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하모니를 연출하는 음악의 도시이다. 악기는 절대 음정을 빚어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각기 다른 코드로 해석된다는 것이 음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빈에서 보낸 시간들이 가슴속에서 하나 둘씩 되살아나 또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충동감이 온몸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