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2010년/3월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 세계에서 가장 큰 사하라 사막.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온다.
국토의 면적 90%가 모래사막으로 이뤄진 리비아는 사하라 사막을 체험하기 아주 적합한 나라다.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크고 한반도의 8배나 되는 광활한 대지를 지닌 리비아는 40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나라 이름만큼 유명하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을 제국주의 국가라 칭하며 오랫동안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한 채 오롯이 알라만을 숭상하던 나라가 바로 리비아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와 리비아는 지중해를 따라 로마제국시절에 세워진 사브라타, 렙티스 마그나 고대 로마유적과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된 세계문화유산 아카쿠스 암각화 그리고 광활한 사막투어 등 다양한 관광자원들을 바탕으로 세계를 향해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리비아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사하라사막과 사막화가 되기 전에 살았던 선사유민들이 남긴 암각화다. 아마 사막과 세계문화유산이 공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하라 여행은 우리에게 흥분과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우선 낮에는 4륜구동차를 타고 광활한 사막과 오아시스를 질주하고, 밤에는 별과 달 이외는 그 어떤 빛도 볼 수 없는 사막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사막투어는 평생 잊히지 않는 여행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 사막 투어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여행임은 틀림없다. 차에 짐과 텐트 그리고 먹을 양식을 싣고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사막을 여행한다는 것이 어쩌면 미친 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선진국이나 일본에서는 사하라 투어가 대중화 된 지 꽤 오래다. 낙타대신 차로 이동하지만 사막에서 먹고 자면서 느끼는 자연의 원시성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지도도 없는 광활한 리비아 사막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1000km 이상 남서쪽으로 달려가야 한다. 모래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트리폴리에서 셉하(Sabha)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850km 정도 달려간 다음 거기서 튼튼한 4륜구동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400km 이상 달려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사막과 조우할 수 있다. 이처럼 사하라 사막과의 만남은 긴 나긴 여정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눈을 뜨면 도저히 믿을 수 없이 펼쳐진 사하라는 분명 오지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여행지다. 아프리카 대륙 북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사하라는 아랍어로 불모지를 뜻하는 ‘사흐라(Sahra)’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미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사하라는 몇 개의 오아시스를 제외하고서는 그 어떠한 생명체도 살 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다.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가장 건조하고 가장 일교차가 심한 사하라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자연의 비경을 모래 속에 꽁꽁하게 숨겨 놓았다. 아프리카 동쪽의 이집트 나일강에서 서쪽의 모로코 대서양 연안까지 약 5,600km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지중해와 아틀라스산맥에서 나이저 강·차드 호수까지 대략 1,700km 정도가 사하라 사막의 사전적인 경계이다. 하지만 사막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경계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점점 더 사바나 지대로 사막화가 이뤄지고 있어 사하라의 전체적인 면적은 수치로 표시하기 어렵다. 경계가 어떻게 됐든 사하라 사막투어의 진수는 문명에서 완전히 벗어나 TV․라디오․컴퓨터․핸드폰 등 일체 가전제품은 사용이 불가능하고, 자동차 배터리에서 만들어진 작은 전구와 촛불이 유일한 문명의 도구일 정도로 오지 중에 오지다. 그래서 사막투어는 바쁜 일상으로 잠시 잃어 버렸던 자신을 오롯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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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에서 바라다 본 새벽 하늘 |
사하라 사막의 석양 |
오아시스에서 만난 베르베르 족의 미소 |
보통 사막투어는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로 이뤄진다. 기간에 따라 사막 깊숙이 들어갈 뿐 보이는 풍경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단순히 모래사막만 매일 달린다고 생각하면 지루한 여행이 되지만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서 1만 년 전의 선사유민들이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198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카쿠스 암각화는 사하라 사막에 뻗어 있는 타드라르트아카쿠스 산맥에 있는 암석에 그려진 것이다. 사암에 새겨진 암각화는 단순히 동물 형상만을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 채색이 되어 인류학적으로 소중한 자료가 된다. 암각화에 새겨진 다양한 동물들은 암각화가 그려진 시대를 말해주는데 코끼리와 코뿔소 그림은 BC 12,000∼BC 8,000년에 그려졌고, 기원전후로는 낙타의 그림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아카쿠스의 암각화에는 목축시대를 뜻하는 소 그림, 전차를 끄는 말 등 인간의 수렵과 농경생활이 함께 표현된 것으로 보아 과거 수천 년 전에는 이곳이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 풀과 나무가 자라는 사바나 지대였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이처럼 사하라는 사막화로 인해 죽음의 땅으로 변했지만 과거에는 선사유민들이 살았을 만큼 비옥한 토양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자연의 비극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된다. 주로 암각화가 있는 아카쿠스 지역은 사암과 모래 그리고 자갈 등이 있어 진정한 사하라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차를 타고 몇 시간만 달리면 정말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란 모래 사구가 눈앞을 가로 막는다. 달리고 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의 모습은 하얀 눈밭이나 푸른 바다를 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특히 한낮을 달궜던 붉은 태양이 모래사막 너머로 사라지면 밤하늘에서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처럼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가득 차 한 폭의 명화를 연상케 한다.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별 하나를 딸 정도로 빼곡하게 찬 밤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화이다. 시간이 새벽을 향해 곤두박질칠수록 별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빛을 발산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별들의 잔치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낮에는 푸른 하늘과 누런 사막이외에는 그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던 황량한 사막이 밤에는 은하수, 북두칠성, 오리온 등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별과 함께 독특한 사막의 밤풍경을 그려낸다. 비록 살갗을 에는 찬 기운이 모래사막을 휘감지만 침낭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밤새도록 별을 봐도 지겹지 않다. 이것이 진정한 사하라 사막의 매력일 것이다.
언제부터가 사하라는 인간이 가지 못하는 금단의 땅이 되었다. 나무와 동물 그리고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만 인식되었던 사막이 극한의 오지로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 21세기 현실이다. 끊임없이 탐험하고 도전하는 인간의 욕구에 거대한 사하라는 조금씩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며 사막의 작은 모래밭을 내준다. 무엇보다 바람이 빚어낸 부드러운 모래곡선은 붓으로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신비감을 안겨준다. 바람에 의해 제멋대로 만들어진 사구이지만 실제로는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에 자연의 예술적 영혼이 아로새겨진 것이다. 아무도 디디지 않은 깨끗한 모래를 맨발로 걷는 상상만으로도 사하라가 가진 매력은 엄청나다. 거의 무릎까지 빠지는 고운 모래밭은 해변 백사장을 걷는 것과 아주 색다르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바람에 의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바람만 불만 새롭게 그림을 그리는 사하라 사막의 위대함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대적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