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해상무역권 차지하기위해 10년동안 벌어져
2012년/6월
역사속 세상만사-신화인가 역사인가, 트로이아 전쟁
지중해 해상무역권 차지하기위해 10년동안 벌어져
신화(神話)란 과연 아름답게 상상된 뻔한 이야기일 뿐일까? 그리스로마 신화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어디까지가 전설이고 어디부터가 실제와 이어지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이번 호부터는 그리스신화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인 ‘트로이아’(그리스어식 표기로 영어식으로는 ‘트로이’라고 표기함) 전쟁과 그 전후의 이야기를 통해 신화 속에 숨겨진 진실, 신화와 실제 역사와의 관계를 들여다보자.
1868년 독일 출신의 사업가인 하인리히 슐리만은 일생동안 번 돈을 털어 터키 정부에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하고 트로이아 일대에 대한 독점적 발굴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신화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 트로이아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훗날 많은 돈을 벌게 되면 꼭 자신의 손으로 트로이아 유적을 발굴해보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게 된다. 그리고 사업으로 많은 재산을 축적하게 되자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그의 발굴 작업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기초로 시작되었는데, 현재의 에게해와 흑해를 이어주는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많은 트로이아 유적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비로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아가 실존했던 도시였으며, 트로이아 전쟁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렇다면 트로이아 전쟁은 무슨 이유로 일어난 걸까? 그 시작은 테티스(Thetis) 여신의 결혼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티스 여신과 펠리우스 왕의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갈 무렵 혼인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앙심을 품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나타난다. 불화의 여신답게 에리스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의 한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문구가 새겨진 황금사과를 던져놓고 사라진다. 세 여신 모두 그 황금사과의 주인은 자신이라 주장하게 된다.
어떠한 신도 이 미묘한 다툼에 끼어들기 꺼려하자 보다 못한 제우스는 이데산(山)의 양치기 파리스에게 황금사과의 주인이 누구인지 판정을 받도록 명한다. (이데산의 양치기 파리스는 원래 트로이아의 왕자였으나, ‘장성하여 트로이아의 멸망을 가져올 운명’이라는 예언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이데 산에 버려진 인물이었다.)
신들도 가리지 못한 심판을 맡은 파리스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 여신은 각자 특별한 선물을 약속한다. 헤라 여신은 동방 전체의 지배권을, 아테나 여신은 지혜와 모든 전쟁에서의 승리를, 그리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약속한다. 예언 때문에 한 나라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던 파리스에게 권력이나 승리 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던지 그는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선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프로디테가 제안했던 아름다운 여인이 헬레네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파리스는 왕이 잠시 크레테 섬으로 출타한 사이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아로 도망친다. 졸지에 아내를 잃게 된 스파르타 왕은 당장이라도 트로이아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강대국이었던 트로이아를 스파르타 혼자 공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메넬라오스가 떠올린 것이 ‘구혼자들의 맹세’였다.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에게는 결혼전 수많은 구혼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헬레네가 누구와 결혼하든 위험에 빠진다면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녀를 함께 보호하겠다”는 맹세를 했었다. (이것은 훗날 서구사회 <기사도 정신>의 효시가 된다) 이렇게 해서 헬레네를 다시 데려오기 위한 그리스 연합군이 결성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헬레네란 존재가 과연 무엇이기에 수많은 나라들이 존폐를 걸고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것일까? 현재까지도 트로이 일대를 발굴하고 있는 많은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트로이아 전쟁의 목적은 당시 트로이아가 장악하고 있던 지중해의 해상무역권을 그리스 본토가 다시 되찾아오기 위한 것”이었다고. 그렇다면 가장 아름답고 귀한 여인 헬레네는< 지중해의 해상무역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호메로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기보다 5백년 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신화적인 상상력과 상징들을 통해 새롭게 기록했던 것이다. 그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따르면 10년동안 지속된 트로이아 전쟁은 결국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는 실제 역사를 대변하는 이야기들이 숱한 에피소드를 통해 전해지는 역사와 전설의 줄타기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다음 호에도 흥미진진한 그리스신화 속 이야기를 이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