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공동체적 바람 담은 반쪽자리 역사이야기
2012년/5월
역사속 세상만사- 신화가 들려주는 역사
집단의 공동체적 바람 담은 반쪽자리 역사이야기
신화(神話)란 무엇일까.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 물론 그런 것도 포함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흔히 사람들의 생활이 문자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는 시대를 역사시대(歷史時代)라고 한다. 하지만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의 생활은 존재했다. 일컬어 선사시대(先史時代)다. 모든 문명과 민족, 나라마다 각자의 시작이 있게 마련인데,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는 문자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기에 알기 어렵다. 이처럼 문자가 없었던 시대를 구술(口述), 즉 이야기로 전승하여 내려온 것이 후대에 신화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개인의 의식적 창작물이 아니라 집단의 무의식적인 공동창작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먼 옛날 사람들이 그들의 공동체적 바람을 담아 쓴 절반쯤의 역사라고나 할까. 실제로 일어난 일과 마음으로 바라는 일이 뒤섞여 구성된 역사이자 이야기인 것이다. 잘 알려진 그리이스 신화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와 같은 것도 원래는 구술로 전해지던 것이 훗날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시대의 초기는 주로 신화로 시작된다.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건국했다고 하는 주몽과 박혁거세는 신화와 역사의 경계선에 있는 인물들인 것이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곧 더 이상의 기원을 알기 어렵다는 의미다. 세계의 모든 문명마다 각각의 시작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신화는 세계 각지에 있다. 예를 들어 잉카신화에서는 태양이 금속으로 된 알에 생명의 빛을 쬐어 인간이 탄생했다고 한다. 금알에서는 족장이, 은알에서는 족장의 아내들이, 그리고 구리알에서는 평민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신화는 모든 문명과 민족, 나라에 있는데, 시초의 이전을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왕조나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화가 반드시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신화, 마야의 포폴부, 기독교 구약성서의 창세기 등은 고대 여러 문명권의 대표적인 신화이다.
신화마다 신이 등장하고 인간과 관계를 맺는 기본구도는 비슷하지만, 문명과 역사의 차이처럼 신화의 성격이나 스토리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특히 우리가 속한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신화는 큰 차이를 보인다.
역사시대와 맞물리기 시작하는 중국의 공식 대표신화,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를 살펴보자. 삼황이란 신농, 복희, 수인의 세 신화적 인물을 일컫는데, 신농은 농경술을, 복희는 수렵술을, 수인은 불을 각각 발명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다섯명의 제왕인 오제(五帝) 즉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이 등장한다. 그중 특히 누루 황자를 써 특정인물을 가리키는 황제(黃帝, 고유명사)는 중국 민족의 시조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밖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겪인 동이족의 치우와 싸워 이겨 중원의 비옥한 평원지대를 정복했으며, 안으로는 문자와 역법, 화폐, 수레 등을 발명하고 보급했다고 한다.
오제 중 마지막 두 왕은 우리가 흔히 태평성대를 가리킬 때 쓰는 ‘요순시대’의 바로 그 요와 순이다. 순왕의 시대에 황하의 치수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왕위를 이어받은 우왕이 세운 나라가 중국 최초의 왕조로 알려진 전설속의 하나라이고, 갑골문으로 사료가 전해지는 은나라, 본격적인 역사시대(기원전 13세기) 왕조인 주나라로 이어진다. 삼황오제신화는 중국왕조의 기원격인 8명의 왕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신화가 왕조의 계보를 설명하는 정치적 특징은 한․중․일 삼국의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신화도 이자나기와 아자나미 부부가 일본열도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기는 하나, 이 부부의 딸이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인데 그녀가 바로 일본 최초의 천황이다. 신화가 지배자인 천황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군신화는 더욱 독특하다. 단군신화의 단군은 인간을 새롭게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내려와 이미 살고 있던 인간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단군이 등장하기 전에도 세상과 인간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천지창조의 과정이 전혀 없는 것은 세계적으로 단군신화만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처럼 동양신화는 서양신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 로마,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등 유럽의 신화는 물론이고 마야와 잉카 등 신대륙 문명권의 신화까지 서양신화는 세상과 인간, 산천초목의 탄생과정을 다루는 천지창조의 비중이 큰 반면, 단군신화, 일본신화, 삼황오제신화 등 동양의 신화는 세계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보다 곧바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영웅이 인간사회의 지배자로 등장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서양신화에서는 신과 인간, 그리고 현세와 내세가 명확히 구분되며, 그것이 종교로 이어져 제정일치 사회의 기반을 다지게 되는 반면 동양신화에서 신은 인간의 정치적 지배자로서의 의미가 강해 왕조와 국가를 정당화하는 의미가 강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