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보다 더 찬란한 도시, 이스탄불
2010/1
|
|
|
| |
▲금방 구워 낸 빵 냄새가 인상적인 화덕 빵가게
밸리 댄스와 함께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수피스트들의 춤 ▲ | ||||
무지개보다 더 찬란한 도시, 이스탄불 |
1666년 과학자 뉴턴은 태양 광선이 프리즘을 통과해 일곱 빛깔의 고운 가시광선을 만들어 내자 무지개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터키 이스탄불을 맑고 투명한 프리즘에 분사시킨다면 어떤 모습의 스펙트럼이 나타날까! 아마 무지개보다 더 빛깔이 곱고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굴절되어 세상에 둘도 없는 이국적인 도시로 비춰질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여행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는 곳이 바로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이스탄불이다.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Straits, 아시아와 유럽를 나누는 자연 국경으로 흑해와 다다넬스 해를 연결하는 폭 1킬로미터, 수심 50∼112미터의 좁은 해협)에 의해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이스탄불은 고대 유럽인들에게 유토피아로 불릴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곳은 끊임없이 인종적·종교적 갈등을 겪은 유구한 역사의 깊이 만큼 패인 상처 또한 깊은 곳이다. 처음 이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다. 여러 개의 폴리스 가운데 하나인 메가리아는 토양이 비옥하며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 상인들의 교류가 활발한 이곳을 상업 도시로 성장시킬 목적으로 식민지로 삼았다. 이때 메가리아의 지도자였던 비자스Byzas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비잔티움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유럽을 한 손에 거머쥔 로마 제국이 그리스정교를 몰아내고 그리스도교인의 신앙심으로 이스탄불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서기 330년 로마의 유명한 콘스탄틴 대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며 도시 이름을 ‘콘스탄틴의 수도’라는 뜻을 지닌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천 년 동안 융성했지만 1453년 오스만 터키의 술탄 메멧 2세의 공격을 받아 화려했던 옛 명성을 역사 속에 묻어야 했다. 이슬람이 지배하기 시작한 콘스탄티노플은 다시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시의 어원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이스탄불의 뜻은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라고 한다. 케말 파샤(본명은 Mustafa Kemal)가 터키의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 전까지 1,600년 동안 이스탄불은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오스만인에게 군사, 종교, 상업, 문화적으로 많은 사랑과 질투를 받은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도시 이름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탄불은 여러 민족과 다양한 종교가 도시를 스쳐 갔으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훌륭한 삶의 지혜가 맑고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우고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에 새겨져 있다.
동양과 서양이 맞닿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 도시에는 동서고금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다양한 건축 양식과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골든 혼·마르마라 해에 의하여 베욜루 지구와 이스탄불 지구 그리고 위스퀴다르 지구 등 크게 3개 지역으로 나뉜다. 베욜루 지구는 금융, 상업,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이스탄불 지구는 과거의 명성과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사원, 성당, 궁전, 박물관 그리고 이스탄불 대학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스퀴다르 지구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전형적인 터키 양식의 이슬람 사원과 신흥 주택지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
| |
동․서양이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풍경 |
재래시장인 ‘바자르’ 입구 |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고 평할 정도로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볼거리들이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동안 사람들의 눈길을 독차지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은 뾰족한 첨탑과 돔이다. 특히 이스탄불 지구는 토인비의 말처럼 옥외 박물관을 연상하게 할 만큼 멋진 성당과 사원들로 가득 차 있어 도시가 가진 특유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건축학상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성 소피아 사원의 웅장하고 거대함은 여행자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사원 안에 들어서면 사람들을 압도하는 높은 천장과 현란한 문양으로 장식된 모자이크가 여행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나님의 지혜’라는 뜻을 지닌 이 사원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화聖畵와 이슬람의 특색이 사원 내부를 장식하고 있어 동서양의 건축 양식과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접촉이라는 뜻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1931년 미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모자이크 벽화들이 발견되면서 비잔틴 시대의 최고 유적지로 평가 받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독특한 이슬람 문화와 건축 양식을 구경할 수 있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 제국 술탄 메멧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지은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궁전이다. 골든 혼, 보스포러스, 다다넬스, 이 삼면의 바다가 만나는 곳에 고전적이고 이슬람풍으로 지어진 톱카프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짙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이스탄불을 연출한다. 그 외에도 1609∼1616년에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지은, 높이 43미터, 지름 23미터의 돔과 260여 개의 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태양 빛이 아름다운 블루 모스크를 비롯하여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박물관, 사원, 성당 등이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 보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다리를 한번쯤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목조목 붙어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재미보다 대륙과 대륙을 내 집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유럽과 아시아를 갈라놓았다면 그 위에 놓여진 보스포러스 대교는 떨어진 두 대륙과 사람들의 삶을 이어 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이다. 이른 아침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 대륙으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 속에서 이스탄불의 새로운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양 대륙을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이방인이 아닌 이스탄불 시민으로서 이 도시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두 발로 양 대륙을 연결한 다리 위를 걷는다면 이스탄불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
|
| ||
이스탄불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피아 성당 내부 |
없는 것이 거의 없는 재래시장의 풍경 |
보스포러스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
눈과 마음속에 이스탄불의 다양한 표정들을 쉴 새 없이 새겨 넣었다면 입 안을 즐겁게 하는 음식을 찾아 떠나 보자. 터키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에겐 안성맞춤으로 먹을 것이 풍부한 나라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스탄불은 수산물이 풍부하고 땅에서 재배하는 다양한 야채와 과일이 많아 최고의 음식을 만들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대 요리로 인정받을 만큼 터키는 요리의 천국이다. 터키 요리는 크게 육류와 생선류로 나눠진다. 터키인의 99퍼센트는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서민층에서는 양고기와 닭고기를 많이 먹고 일부 부유층에서는 소고기를 주로 먹는다고 한다. 특히 서민층에서 많이 먹는 양고기는 다양한 향신료와 야채를 사용해 양고기 특유의 노릿한 냄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가 길에서든 노천 레스토랑에서든 한번쯤 먹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케밥이라는 요리이다. 양고기를 주재료로 만든 케밥은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굽는 쉬시 케밥과 높게 쌓아 올린 양고기를 숯불 위에 매달아 회전시키면서 구워진 부분부터 얇게 썰어 야채와 밀가루 전병에 싸서 먹는 도네르 케밥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만일 육류가 싫다면 부둣가 노천으로 가면 된다. 고등어와 정어리로 만든 샌드위치를 비롯해 각종 어패류와 생선 요리가 많아 얼마든지 골라 가며 먹을 수 있다. 이들 또한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이곳저곳을 발길 닿는 대로 나그네처럼 골목길을 누비다 보면 해는 벌써 서산 너머로 질 채비를 한다. 골든 혼에 붉은 기운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하면 이스탄불에서 가진 아름다운 추억들이 어두운 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갈라타 교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그 앞으로 멋진 궤적을 남기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배들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이스탄불의 풍광을 빚어낸다.
양 대륙이 만나는 바다 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수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시나브로 깔릴 때면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동자마저도 온통 붉은빛으로 변하고 이스탄불이 뿜어내는 은은한 미소에 사정없이 빨려 든다. 거리와 상점에 하나 둘씩 네온사인이 켜지면 여행자의 발길은 소리도 없이 선술집으로 향한다. 한 잔에 여행의 피로를 씻어 버리고 빈 잔에 이스탄불의 이국적 정취를 담아 마시면 이 도시를 경험한 아름다운 영혼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