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부터 건재한 역사마을-대정읍 일과1리
2010년 / 1월
신석기시대부터 건재한 역사마을
대정읍 일과1리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생명이 시작된 이유에서인지 바다는 언제나 친근하고 편안하다.
이런 인간의 친수성(親水性)은 발길을 바다로 이끈다. 무엇을 하더라도 살포시 안아 줄 것 같은 바다가 곧 어머니의 품인 것만 같다.
북적거리는 여름바다와는 다르게, 쓸쓸하면서도 고요한 바다는 올 한해를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 해가 지면서 그려놓은 붉은 수평선을 따라 가다 멈춘 곳,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1리.
과거 ‘날외’라고 불리던 일과리는 1900년 일과리와 동일리로 분리되었다가 그후 일과 1리, 일과 2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전쟁과 사화로 세상이 어수선하던 450여 년 전, 중종(中宗) 말엽에 일과1리에는 정치에 염증을 느낀 선비들이 묻혀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정규안(丁奎安)씨의 15세조(世祖) 정운의 아들이 지 씨와 임 씨를 대동해 난을 피하기 위해 선친을 찾아 일과리에 정착하게 된 것이 일과리 설촌 근원이 되고 있다.
특히 풍부한 용천수는 사람이 모이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인류활동 … 유서 깊은 역사 창조
오래전 신석기시대부터 이곳 일과1리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마을 내 고인돌이 말해준다.
지금도 대정읍과 안덕면 일대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서림수원지가 일과1리에 있고, 마을앞쪽 바닷가엔 환해장성과 서림연대가 굳건하게 서 있어서 유서 깊은 역사를 대신 전하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문태진 할아버지는 일과1리의 자랑은 뭐라고 해도 ‘서림물’이라고 일렀다.
“일과1리에 있는 ‘큰서림(지금의 대수동 일대)’은 제주도 3대 용천수의 하나로 여름에는 주민들만이 아니라 외지에서도 손님이 많이 왔었어요. 내가 어릴 때만해도 여름철 김매기가 끝나면 주민들은 물맞이를 하러 서림물에 가곤 했었다”고 말했다.
문 할아버지는 “맑고 깨끗한 생수에 농사에 찌든 심신을 담그고 나면 저절로 상쾌한 기분이 들어 고진감래의 인간사가 새삼 음미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일과1리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대정지역에서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서림연대(西林煙臺)는 봉화대의 일종으로 과거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이곳 서림연대는 북쪽으로 용수포구에 있는 ‘우두연대’와 남쪽으로는 상모리의 ‘무수연대’와 교신을 했던 연대다.
높이 3.9m 사다리꼴 형상의 서림연대는 지난 1977년대 복원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활동이 시작된 일과1리는 농업이 지역경제에 든든한 근간이 되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보리와 조, 콩, 고구마가 주류를 이루던 일과1리 농업은 축산업과 과수, 비닐하우스 등 근대농업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늘과 양파, 감자 등 원예와 특화작물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서 한겨울에 일과1리를 찾아도 파란 마늘잎이 초록의 빛을 머금어 싱싱함을 전달한다.
농·수·축산업 1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일과1리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하루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마을사람들은 아플 시간이 없어서 병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 끈질긴 정신력, 병균 키울 여유도 없게 해
하루를 쉬면 자식들이 이틀 동안 배를 곪아야 한다며 바지런을 떨었으니, 몸이 상할 만도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모정과 하루도 몸을 놀리지 않았던 이 지역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정신력은 웬만한 병은 키우지도 못하게 했다.
바쁘고 부지런한 성향 때문에 일과1리는 전통과 협동의 마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이장이나 청년회장을 선출할 때나 마을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서로 돕는다.
마늘이나 콩 등 농산물 수확이 끝나는 시기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발전기금을 모으기도 한다.
문 할아버지는 협력적이고 자발적인 주민들의 활동들은 모두 주민 개개인의 건강이 근간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게 모두 내 몸이 건강하니까 이웃도 생각하고 마을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힘들게 일을 하더라도 더불어서 즐겁게 사는 공동체로 인해 쌓였던 피로감도 풀려 독이 쌓일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과1리 주민들은 씨름을 즐기며 체력도 키우고 주민들간 우정도 키운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안한 어린이들이 씨름을 하면서 놀 정도니, 마을의 ‘씨름붐’이 어느 정도인지 쉬이 짐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