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제주의건강마을

바람도 쉬었다 가는 평화로운 마을-성산읍 삼달1리

제주한라병원 2012. 2. 14. 15:34

2009년 / 11월

바람도 쉬었다 가는 평화로운 마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1리


부드럽고 아기피부처럼 보드라운 바람이 부는 봄에도,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바람과 함께 떠오르는 이가 있다. 제주에 홀려 오로지 사진작업에 매달리다 루게릭병으로 2005년에 요절한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
충남 부여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했었지만 제주도의 풍광에 깊이 매료된 1985년부터 아예 섬에 정착해 살았던 그가 마지막 흔적을 남긴 곳은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고인이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1리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작업공간이자 작은 전시장. 갤러리 앞마당 구석 한 그루 나무, 풀 한 포기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간, 故 김영갑이 있었네

 

그곳에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그가 남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로 사계절 내내 부산하다.
고(故) 김영갑과 갤러리 두모악은 삼달1리 마을이 유명해지는데 한 몫을 했다. 물론 삼달1리 마을이 담고 있는 평화로움과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기본이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제주의 풍광을 좇았던 고(故) 김영갑이 제주에 대한 사랑과 사진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런 그의 혼이 스민 유작들은 삼달1리 마을에 돛을 달아준 셈이다. 
고(故) 김영갑이 정착했던 삼달1리는 어떤 마을일까.
삼달1리는 동쪽으로 독자봉을 경계로 신산리와 서쪽으로는 남산봉을 기점으로 표선면과 성읍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삼달1리는 약 350여 년 전인 조선 인조 때 현재 마을제를 지내고 있는 본향당을 중심으로 경주 김씨, 청주 한씨, 진주 강씨, 제주 고씨들이 5~6호의 가구를 이루며 살았는데 당시에는 크게 번성하지 못했었다.
이후 영조25년(1749년) 인근 신천리에서 신천 강씨가 자녀 6남매와 함께 이주하고, 곡산 김씨와 제주 고씨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마을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삼달리는 당초 마을이 형성되던 곳 가까이 있는 ‘더러물내(川)’의 형상이 누워있는 강을 닮았다고 해서 ‘와강’이라고 이름 지어졌었는데 양반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 영·정조 시대 지평(持平), 장령(掌令) 등을 역임한 강성익 옹에 의해 지금의 ‘삼달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 보은과 덕, 공경으로 살아가다

 

‘삼달리, 삼달리…’ 이름을 되뇌이면 정겨움이 느껴진다. 
삼달리라는 마을 이름에는 ‘조정에서는 규율이 중요하다’, ‘마을에서는 웃어른을 섬겨야한다’, ‘세상에 보은과 백성을 위하는 것은 덕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3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름 때문인지 마을에 들어서면 자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나지막하게 형성된 촌락과 길가의 꽃들이 바람에 기분좋게 흩날리며 가벼운 목례를 건넨다.
삼달1리는 바다와 떨어진 지역 특성상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해왔다.
170여 세대 430여명의 주민들은 감귤과 당근, 무 등 복합영농을 하며 살아간다.
이곳 삼달리 역시 여느 마을 못지않게 노인 인구가 많다. 전체 인구의 10%가 90세 이상 노인이며, 65세 이상 주민도 상당수로 알려지고 있다.

 

 

 

# 성격 좋고 성실한 ‘양반마을’

 

특히 감귤 수확철을 맞은 요즘 집에서 손 놓은 노인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건강하기로 유명하다. 이곳 삼달1리 주민들의 성실함은 인근 마을에서도 칭찬한다.
마을에서 만난 강태춘 할아버지는 “주민들 성격이 온순하고 주민들 사이 유대관계도 좋아 다른 주민들이 삼달1리 주민들과 사돈 맺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며 “아마도 주민들의 성격이 좋고 부지런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래 사는 노인이 많은 곳이 진정한 건강한 마을은 아님을 꼬집는다.
강 할아버지는 “농촌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많아진 것이 노인 수”라면서 “물론 노인 스스로 자존해서 살아가려는 의지가 그들의 심신을 단련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이와 노인이 두루 섞여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건강마을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맑은 예술의 혼을 붙들었던 작은 마을, 삼달1리는 고(故) 김영갑을 붙들었듯 분명 또 건강한 젊은이들의 정신과 그들의 영혼을 쉬어가게 하는 쉼터이자 안식처로 또다른 인연의 발길을 하나, 둘 불러들일 것이다. 바람도 쉬었다 가는 삼달1리는 그런 매력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