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해안가 정겨운 마을 ‘대평리’
2009년 / 2월
나지막한 해안가 정겨운 마을 ‘대평리’
나지막한 해안가에 오밀조밀 촌락을 이룬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대평).
서귀포시 안던면 안덕계곡에서 남동쪽 바닷가 방향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면 막다른 곳에 대평리(大坪里)가 있다.
바닷가에서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판에 자리 잡은 곳이라고 해서 ‘큰드르’ 또는 넓은들을 뜻하는 ‘난드르’라고도 불린다.
서귀포시 하예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안마을, 이곳은 230여세대 550여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안덕면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대평리는 안덕면이 주머니 속에 숨겨둔 ‘작은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마을 길목마다 수줍게 핀 정겨운 꽃들과 고깃배 10여척이 정박해 있는 작은 포구와 아름다운 해안가. 그야말로 대평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다.
안덕계곡의 맥을 이으며, 그 지세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월라봉(도래오름) 남쪽 해안과 접해 있는 암벽지대, 박수기정은 대평리의 비경이다.
병풍절벽 중간에 사철나무가 자생하는 묘한 경관과 갖가지 암석들은 마치 ‘바위 박물관’에 들어서 있는 느낌마저 준다.
지상 1m 암반에서 1년 내내 샘물이 솟아나와 이 물을 바가지로 마신다는 연유에서 유래된 이름이 박수란다. 박수에서 나오는 샘물은 피부에 좋다고 해서 백중날 물맞이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아내일도 내 일’ 부부 협동은 생활의 원동력
봄바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햇살이 좋은 지난 8일 찾은 대평리 해안가에는 박수기정을 병풍삼아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나오는 해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어 비옷을 입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를 포함한 남성들은 해산물이 가득한 망사리(채취한 해산물을 담은 그물)를 어깨에 메고 일정장소로 옮긴다.
해녀들 스스로 망사리를 옮기는 다른 지역 풍경과 다른 풍경이다.
“대평 해안에는 해산물을 옮길 수 있는 작업로가 없어요. 무거운 망사리를 들고 바위를 넘나드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대평리에서는 예전부터 남편들이 이 작업을 대신 해주고 있어요.”
한 남성이 이색풍경에 대해 설명해줬다.
대평리에는 현재 50여명의 해녀가 있다. 80대 해녀 2명을 비롯해 대부분 60세를 넘은 고령의 해녀들이지만 건강한 표정들이다. 물질이 힘겹지만 그 일을 도와주는 남편들의 외조 때문에라도 마음고생을 덜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평리 남성들은 한량? 절대 아니다. 이곳 마을 남성들은 10여척의 고깃배를 이용해 연안에서 옥돔과 조기 등을 잡아 올린다. 마을중심으로 비교적 평야지가 형성돼 있어서 시설채소와 마늘 등이 재배되기 때문에 밭일도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한다. 전형적인 반농반어 마을이다.
# 풍경도 인심도 정겨운 대문(大門)없는 대평리
수려한 자연환경, 농촌의 인심, 풍족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은 자원... 그러나 이곳 마을에 없는 것이 있다.
대문이다. 집집마다 대문 있는 곳이 없다. 집 울타리도 나지막하다.
마을을 걷는 동안 할머니 세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어느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대문이 없기에 출입도 쉬웠다. 낯선이들에게 조차 따뜻한 마음으로 반갑게 맞는 곳이 대평리다.
“원래 대평리에 대문이 없었어요. 우리 부모님, 조부모 때도 대문이 없었으니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거지도 없고 도둑도 없고...”
나고 자란 곳이 대평이라는 강응옥(94) 할머니가 설명했다.
예전 어르신답지 않은 건장한 체구의 강 할머니 머리에는 이미 서리가 내린지 오래지만 건강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18살 때부터 물질을 했어요. 매년 3월이 되면 만주, 일본 등지로 나가서 물질을 하고 추석이 가까올 쯤에는 고향에 돌아오곤 했죠. 그렇게 해녀로 부지런히 살아와서 아직도 건강한 것 같아요.”
강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과연, 500여명의 마을 사람 중 65세 노인이 140여명이라는 건강한 대평마을.
이 마을이 건강마을의 비결은 병든 몸과 마음도 깨끗이 씻겨버릴 만큼 수려한 풍경,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족애, 대문이 없을 정도로 의심없이 남을 믿는 이들의 건강한 사회성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