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이 많아 ‘아홉 굿(good)’인 마을, 낙천리
2008년 / 11월
좋은 것이 많아 ‘아홉 굿(good)’인 마을, 낙천리
제주시에서 평화로를 따라 질주(?)를 하다 이시돌목장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저지마을을 지나 다시 북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진한 주황빛 옷을 입은 감귤과수원이 미각을 자극하고 길 왼쪽으로는 멀리 바다까지 볼 수 있는 한경면 낙천리에 다다르게 된다.
요즘에는 쪽파 수확철이라 물오른(?) 쪽파향도 향긋하게 다가오는 마을, 낙천리는 제주에서도 보기 드문 샘, 제주말로는 굿이 9개가 있어 아홉굿 마을이라고도 불리 운다.
최근에는 아홉 가지 좋은(good) 것들이 있는 즐거운 마을이라는 다른 의미도 생겼다.
마을 안 길에 들어섰을 때 풍겨오는 평온함은 92세대, 230여 명이 살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 낙천리가 외지인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인 것만 같다.
낙천리 안길에 들어서면 길목마다 비치된 의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의자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제공되는 두 번째 선물이다.
여행에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쉬면서 낙천리의 평온함을 만끽하게 하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 계절에도 4가지 향기를 입는 ‘낙천리’
300명도 채 되지 않는 이곳 마을은 70세 이상 노인이 50여명이 되는 건강마을이기도 하다.
물과 공기가 좋아서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순만 쉬고 있어도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매사 긍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성격이 건강의 비결이란다.
가을 햇살이 따뜻한 날, 집 마당 평상에서 쪽파를 손질하던 한광섭씨(74)는 이런 낙천리의 얘기를 소상히 전해줬다.
사실 그는 낙천리 ‘토종’은 아니다. 지병이 있던 아내와 낙천리에 둥지를 튼 지 이제 3년이지만 그는 낙천리 그 누구보다도 낙천리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낙천리를 더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샘이 9개가 있다고 해서 '낙천'이라고 불렸던 낙천리는 요즘 9개자 좋은 것이 있어서 '아홉굿 마을'이라고 불린다.
“제주 여행을 하면서 곳곳을 돌아다녀 봐도 낙천리만큼 자연이 아름답고 인심좋은 곳이 없더라니까요. ‘낙천’ 말 그대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그야말로 낭만이 흐르는 곳이어서 망설임 없이 결정했어요.”
물론 그가 낙천을 ‘낙점’하기까지는 아내의 요양지로서의 이유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지난 3년간 아내가 수술을 한 번 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건강이 호전됐단다.
“매일 아침이면 느린 걸음으로 산보를 합니다. 여름에는 아침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마을 어귀를 걷는데 얼마나 상쾌한지 모릅니다. 계절만 4계절이 있는 게 아니에요, 계절에 따라 자연의 향기도 다르답니다.”
3년간 어김없이 아침 산보를 했으니 이제 1년 궤도에 따른 변화에 대해 그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 밭작물에서 풍기는 향기들이 각 계절에 따라 달라지니 전 여기서 계절도 향기를 입는 걸 느꼈지요.”
그의 건강한 미소는 정말 편안했다.
낙천리 마을 곳곳에는 마을에서 외지인들을 위해 마련한 의자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이웃 간 정도 깊어지고 건강도 좋게 하는 ‘품앗이’
한씨가 낙천리에 반한 또 다른 이유는 지역 사람들의 인심과 그들의 근면함이었다.
“동네부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지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요. 새벽 4시만 되면 오늘은 누구네, 내일은 누구네, 품앗이를 하면서 그렇게 부지런하게 살 수가 없어요.”
그의 말마따나 이곳 지역 사람들은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 들어도 그들의 땅을 파서 땅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가지고 생활을 영위하고 자녀 교육까지 시킨 사람들이다.
그런 인심 좋고 부지런한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같다는 그는 나름대로 또 건강비결을 가지고 있다.
욕심이 없어야 하는 것이 그의 비결에 내재된 전제지만 어쨌든 그는 낙천리의 자연과 벗삼고 있다. 특히 그는 봄철 고사리 꺾기를 최고로 친다.
“가만히 있는 게 건강을 위해 좋은 게 아니지요. 낙천리에는 개간되지 않은 곳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곳에 고사리가 많아요. 욕심내지 않고 한 두 시간 고사리를 꺾는 것이 엄청나게 건강을 좋게 합니다. 또 트집이라고 잡는 안사람이 있어서 가끔 그거에 대해 대답도 준비하고 그렇게 사는 낙 아니겠어요?”
아내가 직접 뜨개질해서 만든 모자를 쓰고 후덕한 낙천리 인심만큼이나 인상 좋은 그를 카메라 렌즈에 담고 싶었지만 극구 만류해서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 아쉬움은 건강을 생각해서 프림 대신 우유를 넣었다며 직접 내오신 카페오레 한 잔에 잊어버렸다.
그리고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그와의 긴 대화는 건강을 위해 가장 버려져야 할 것이 욕심이라고 했는데 건강마을, 낙천리에 살고 싶은 욕심을 생겨버렸다.
수령 100년이 훨씬 넘은 마을 한 가운데 팽나무. 이 나무 아래서 낙천리 사람들은 정보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