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면의 야만성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2011년/5월
인권(人權) 이야기 III
-소수자들의 인권, ‘마이너리티 리포트 上’-
"우리 내면의 야만성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베트남 숫처녀, 초․재혼 상관없음, 장애인 얼마든지 가능,
후불제, 원가제공, 100% 환불, 도망가면 책임짐”
이것이 도대체 뭐하는데 쓰이는 문구일까. 시골 읍내 모퉁이 벽이나 플래카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결혼소개업자의 광고문구다. 문구를 꼼꼼히 보면 거의 인신매매 범죄단이나 쓸법한 문구들인데, 이것들이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버젓이 광고랍시고 뿌려진다는 것이 참으로 당혹스럽다.
송강호와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주연한 ‘의형제’라는 영화가 있었다. 국정원에서 해고당한 전직 요원 송강호는 호구지책으로 흥신소를 차리게 되고, 우연히 만난 북파 공작원 강동원을 흥신소 직원으로 채용하여 전국을 다니며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 상당히 따뜻한 내용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여서 참 좋았지만 가슴시린 구석이 있다. 이처럼 호평받는 한국영화에서 ‘도망간 베트남 처녀’가 일상적 소재로 활용될 만큼 왜곡된 우리의 현실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든 ‘소수’(少數)의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서울대 조국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신부들, 혼혈아, 동성애자,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형사피의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권 측면에서 소외되기 쉽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들 중 외국인 노동자와 신부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국내에 약 100만 명 내외로 추정되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들은 산업기술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라는 합법적 틀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들에겐 인종적 편견에다 부의 편견까지 겹쳐 착취와 억압이 일상적으로 주어진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손바닥만한 핸드북 한국어교재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러한 현실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 장의 내용은 이렇다. “때리지 마세요. 만지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2005년 8명의 태국 출신 여성노동자가 노말 헥산(n-Hexan)이라는 독성물질 중독으로 다발성 신경장애(하반신 불수)를 앓게 된 일이 있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CD나 DVD 등의 제품 완성 전 세척작업과정에 노말 헥산 관련 용제가 사용되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지급하는 마스크, 장갑 등의 기본적 보호 장구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일은 태국 언론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며 태국 내 커다란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대한 불편한 국민적 정서가 형성되었으리란 점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참 어처구니없지만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실이다. ‘방가방가’라는 영화를 보면 그들의 소외된 삶의 몇 가지 편린들을 더 살펴볼 수 있다.
외국인 신부들의 사례도 충격적이다. 2006년 말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한국인 장모씨와 베트남에서 식을 올린 후 2007년 5월 한국에 입국해 신혼생활을 시작했던 19살의 베트남 신부, 후안마이. 그녀는 그해 7월, 신혼생활 2개월 만에 충남 천안의 지하 셋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갈비뼈 18개가 골절될 정도로 잔혹했던 범행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그녀의 46살 난 남편이었다. 결혼 1달 만에 결혼생활에 실망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를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이 ‘사기결혼’이라며 마구 때려 결국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말았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대전고법의 김상준 부장판사는 범인인 남편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하던 2008년 1월, 이 사건을 통해 들춰진 우리사회의 야만성을 자성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다음과 같이 담았다.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은 베트남 신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미숙함과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다. …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먹고 살만해져야 지켜질 수 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본 태국 여성 노동자들이나 베트남 신부 후안마이의 경우에서 느끼게 되는 것처럼.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 아무리 다수(多數, Majority)에 속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 소수(少數, Minority)이기에, 마이너리티이기에 여건이 어렵더라도 더더욱 존중되어야 할 우리 생활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또 다른 소수자들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