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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人權) 이야기 I-인권의 의미와 '무지갯빛 인권'

제주한라병원 2012. 2. 1. 11:12

2011년/3월

인권(人權) 이야기 I
- 인권의 의미와 ‘무지갯빛 인권’


필자가 사는 지역에 도서관이 들어선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구립 도서관이지만 비교적 장서도 풍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알찬 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도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 책도 빌려 읽고, 주중에 진행되는 각종 프로그램에도 기회 닿는대로 열심히 참여하는 편이다.

 

이곳에서 얼마 전 서울대에서 법학을 가르치시는 조 국 교수를 초청해 <인권의 참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열린 도서관 강연’시간이 마련되었다. 거침없고 정연한 논리 전개와 더불어 핸섬한 용모까지…. 조국 교수의 강의를 꼭 듣고 싶어하던 집사람과 함께 강연에 참석한 나는 낯설게 느껴지던 인권에 대한 관점이랄까 가치랄까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의 강연을 토대로 필자는 인권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해보기로 했다. 우리 병원보 가족 여러분과도 함께 공유하고 이를 통해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싶어서다.

 

먼저 인권(人權, human rights)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현실 속의 사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게 좀 더 생동감있게 인권을 이해하는 방법일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나라에서 불법체류자로 머무는 외국인은 그 나라의 실정법을 위반한 범법자이다. 따라서 그들은 출입국관리 사무를 맡는 공무원이나 경찰에게 붙잡히면 본국으로 송환되는 처지에 놓이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불법을 행한 이들에겐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범법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도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세계 인권선언 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 그리고 2조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고 밝히고 있다. 인권은 권리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특정 국가나 특정 실정법과 관계없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장받을 수 있고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는 실정법상의 권리와는 별개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의 예처럼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중 불법체류자의 행위는 ‘불법’이고 그들은 실정법을 어긴 ‘범법자’다. 그러나 그들이 불법을 저지른 범법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여전히 존중받고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권의 기본적 개념이다. 즉 인권은 ‘인간의 존엄한 권리’로서 법적 권리뿐만 아니라 법 이전의 자연권과 도덕적 권리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을 성격에 따라 구분하여 표현한 용어가 있다. ‘무지갯빛 인권’이 바로 그것이다. [청색인권-적색인권-녹색인권-갈색인권]. 인권의 단계를 이처럼 4가지 컬러 코드로 분류한 ‘무지갯빛 인권’은 ‘평화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요한 갈퉁이라는 노르웨이 학자가 맨 처음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제1차 인권혁명을 주도했던 부르주아들이 추구했던 인권을 ‘청색 인권’(The Blue)으로 분류한다. 이것은 우리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 투쟁과정을 거쳐 확보해낸 자유권과 상통한다. 즉 신체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화 과정을 거쳐 현재 이 청색인권이 상당히 신장된 상황이다.

 

다음으로 노동자, 농민, 무산계급이 주도한 경제․사회적 권리운동을 ‘적색 인권’ (The Red)으로 분류한다. 이는 사회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교육, 의료, 주거, 복지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를 주로 말한다. 현재 우리사회는 사교육비 부담, 높은 주거비, 고령화에 따른 노후대책 불안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로 적색인권의 개선이 꼭 필요하다.

 

셋째로, 여성, 아동, 소수자, 이주자, 원주민 등이 요구하는 권리와 더불어 발전권, 환경권, 평화권 등은 ‘녹색 인권’ (The Green)으로 분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서구권과 제3세계에서 내세운 자기결정권과 문화상대주의는 ‘갈색 인권’ (The Colored)으로 분류된다. 나라마다 각기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이 이해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인권에 대한 갈퉁의 분류 중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적색인권과 녹색인권이다. 이것들에 대해 다음 호부터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 요한 갈퉁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한 요한 갈퉁은 오슬로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였으며 통계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과 사회학, 철학, 인문사회학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59년 분쟁과 평화연구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평화연구에 심취하였고, 1964년 저널 오브 피스 리서치(Journal of Peace Research)를 창간하였다. 오슬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베를린대학교 교수도 역임한 그는 평화의 개념을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였고 사회통합의 단계를 적극적인 평화로 보았다. 세계 최초로 국제평화연구소(PROI)를 설립한 이래 평화문제에 대한 70권이 넘는 저술과 국제분쟁에 대한 정력적인 활동으로 국제 평화학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인권의 구분을 ‘컬러 코드’로 정리해 낸다. 즉 그가 색깔에 따라 분류한 인권의 단계는 청색인권, 적색인권, 녹색인권, 갈색인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