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베리家, 최부자집 그리고 만덕
2010년/4월
발렌베리家, 최부자집 그리고 만덕
세계의 명문가(名文家) 중에 스웨덴의 ‘발렌베리’라는 가문이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GDP의 약 30% 정도를 차지하는 발렌베리그룹을 이끌고 있다. 우리가 들어본 기업으로는 에릭슨이나 사브, 엘렉트로룩스 같은 기업들이 발렌베리그룹 소속이다. 이 그룹 산하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스웨덴 증시의 50%를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스특홀름 증권거래소 자체도 발렌베리그룹 소유다)
5대에 걸쳐 150년을 지켜온 이 가문의 재산과 그 경영과 관련된 역사 속에 독점이나 재벌으로서의 모순 따위가 있었을 법도 하지만 이 가문은 스웨덴 국민 대다수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존경받는 부자가 돼라!”는 가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은 경제범죄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경범죄조차도 저지르지 않는 도덕적인 삶으로 스웨덴 국민들에게 모범이 된다. 또 발렌베리 그룹의 경영원칙은 회사는 그룹이 소유하나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기업들은 분식 회계라든가 오너 친인척들의 독단적인 경영에서 자유로워져 건전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이 가문이 보유한 주식과 재산은 다 합쳐도 2억 크로나(한화로 약 320억) 정도다. 스웨덴의 내로라하는 부자들보다도 상대적으로 재산이 적다. 그 이유는 그룹의 이익이 모두 재단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이 기부와 자선에 쏟는 진정성은 그들의 생활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누구도 호화쇼핑이나 통 큰 씀씀이로 구설에 오르는 일이 없다.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명품 같은 것은 남의 얘기일 뿐 어릴 때부터 형제자매의 옷을 물려 입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전통이다. 사소한 생활에서부터 기업 경영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앞서 도덕적인 모범을 보임으로써 저절로 스웨덴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모 대기업도 발렌베리 가문을 벤치마킹하려고 검토했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규모와 문화적 양태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발렌베리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바로 경주 최부자집이다. 본시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경주 최부자 집은 12대, 300년 이상을 만석꾼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300년 이상을 이어온 이 가문의 ‘가훈’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둘째, 매년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하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이 극심하던 때에는 최부자집이 경상북도 인구의 약 10%를 구제하기도 했다. 단순하게 재물이 많아 적선을 베푸는 차원을 지나 한 가문의 확고한 원칙을 세운 셈이다. 최부자집의 이런 사회공헌 노력은 거꾸로 최부자 가문을 위기에서 구출해주기도 했는데, 19세기 말 민란과 동학혁명 속에서도 최부자집은 집안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요즘 드라마에 제주의 자랑스런 인물인 김만덕의 이야기가 방영되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약간의 허구를 첨가하여 극적 요소를 강화하기도 하지만 큰 뼈대는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하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조실부모하고 매우 가난한 시절을 보내다 기생이 되기도 했으나, 객주를 차려 제주 최고의 부자로 거듭난 그녀의 이야기가 방송의 소재가 된 것이다.
조선 최초의 여성 CEO라 불릴만한 거상(巨商)으로 성장한 만덕. 그녀는 자신은 비록 차별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전 재산을 털어 백성을 구제한다. 그녀의 사후에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은혜로운 빛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의미인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써 만덕의 일가에 보내기까지 했다.
멀리는 발렌베리에서 가까이는 최부자집과, 그리고 김만덕에 이르기까지 세상으로부터 받은 부와 지위에 상응하는 모범과 책임을 몸소 실천한 부자들의 이야기가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때다. 특히 제주에 그러한 전통이 더욱 발전되고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