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효과
2009년 / 7월
술과 인간(人間)
- Ⅲ. 술의 효과
사람마다 술 마시는 이유와 습관은 다르겠지만, 마시고 나서의 효과는 대개 비슷하게 시작된다. 꽉 조였던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없던 용기도 좀 생겨난다. 필자의 경우엔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비교적 적어서인지 두 세잔만 마셔도 얼굴에 홍조가 오른다. 또 어떤 이들은 몇 병을 마셔도 얼굴에 표하나 내지 않다가 막상 걷다보면 발걸음은 갈지자를 그리기도 한다. 취기가 심해지면 했던 이야기를 수십 번 되풀이하거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용감무쌍한 호기를 부리기도 하면서 다음날 아침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젯밤의 기억이 사라졌음(필름 끊김)을 쑥스럽게 토로하기도 한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술과 가깝게 지낼 수 밖에 없는지라 도대체 술은 우리에게 어떤 작용을 하길래 이러저러한 모습을 이끌어내는지 나름 공부를 해봤다. 잘 아시는 분들(대개 좋아하시면 잘 아시게 되는 법)께서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혜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술을 마시면 우리 몸 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술 속에 들어있는 에탄올 분자는 크기가 매우 작고 물에 쉽게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화기관에서 빠르게 흡수되는데다, 지방에도 용해되기 때문에 우리 세포막을 자유롭게 통과한다. 이런 성질 때문에 에탄올은 우리 뇌 속으로 들어가 특정한 단백질 분자와 결합함으로써 독특한 효과를 낸다.
우선 소화기관을 통해 우리 몸 속으로 흡수된 에탄올 성분은 먼저 간으로 가 거기에서 분해된다. 이 단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유독성 물질이 생산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이것은 알데히드 탈수소 효소에 의해 해롭지 않은 아세트산으로 재빨리 전환된다. 그런데 이 효소가 선천적으로 무력하거나 부족한 일부 사람들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급증하여 얼굴이 붉어지는 이른바 알코올 홍조반응이 나타난다. 이들은 소주 한 잔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쿵쿵거리며 현기증을 느끼는데, 당사자들은 몹시 괴로워하므로 이들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은 실은 지독한 폭력이며 큰 실례이다.
간에서 일부는 분해되지만 대부분의 에탄올 분자는 파괴되지 않고 뇌로 이동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몸은 자체적으로 생겨나는 미량의 에탄올 분자를 간에서 처리하는 정도로만 준비되어 있지, 소주나 양주처럼 과도한 양의 에탄올이 들이닥쳤을 때 그것을 전부 분해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뇌 속에 들어간 에탄올 때문에 우리는 취하는 것인데 도대체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에탄올은 뇌의 거의 모든 회로, 거의 모든 체계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생화학자들은 이를 두고, 뇌 속에 화학 폭탄이 터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술이 우리 뇌에 미치는 효과는 워낙 복잡다양하기 때문에 술 마신 후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떠드는 사람, 싸우는 사람, 또는 울다가 웃다가 떠들다가 싸운 후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까지... 그 모습도 매우 다양한 것이다.
음주의 가장 대표적인 효과는 불안의 경감이다. 현대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불안을 진정시키는 약물로는 발륨이 대표적인데, 적당량 사용하면 다른 뇌 체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 불안을 줄여준다. 그런데 알코올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술을 찾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불안감을 줄이는 (-)의 효과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알코올에는 고조감과 도취감을 진작시키는 (+)의 효과도 있다. 우리 뇌에는 생존에 도움이 되도록 보상회로와 처벌회로가 있어서, 몸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면 괴로움을 주고 이로운 행위를 하면 즐거움을 준다. 잘 먹고 난 후에 느끼는 포만감이나 남녀관계에서 오는 극치감 같은 것이 보상회로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의 쾌락중추에 작용하는 물질로는 코카인, 헤로인, 암페타민, 니코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알코올의 영향으로 분비되는 것으로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있다. 술을 마시면 도파민 수치가 조금 올라간다. 음주 초기 약 20분 정도에 나타나는 기분 고조, 활력의 증대가 그 영향의 결과다. 엔도르핀은 심한 스트레스나 상해를 입었을 때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인데, 고통 메시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은 10킬로미터 정도 뛰면 알 수 없는 도취감, 소위 ‘러너스 하이’를 느낀다고 한다. 사실 이는 몸에 부여된 엄청난 ‘시련’에 대해 뇌가 생존차원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분비시키는 물질 때문이다. 그런데 술을 마실 때에 바로 그런 효과를 내는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것이다. 엔도르핀은 다른 한편으로 도파민 분비도 유발하는데, 이렇게 되면 고통을 경감하면서 쾌락을 증대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내는 셈이다. 알코올은 그 밖에도 수많은 신경 전달물질들과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몸 특히 뇌에 복잡하게 작용하는 알코올의 효과. 술 마시는 사람 스스로 절제하고 중용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사람의 몸에 ‘화학 폭탄’을 던지는 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특히 가끔 필름 끊기시는 분들, 더욱 신경쓸 일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