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신화 속 삼성(三姓)이 바로 여기 있구나

제주한라병원 2011. 11. 10. 13:48

2011년 / 4월

 

알고 싶은 제주 - 성산읍 온평리

신화 속 삼성(三姓)이 바로 여기 있구나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제주시조인 고·양·부 세 신인(神人)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고려사」는 고·양·부 삼성(三姓)이 동해변에 떠오른 석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 공주 셋을 배필로 삼아 자손이 번창했다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그 때 말과 소도 함께 석함에서 내렸다. 그렇지만 세 신인이 등장하는 신화 속에는 석함이 떠올랐다는 장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옛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런데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를 가면 전설이 사실이 돼 있음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세 신인이 석함을 보고 쾌성을 질렀다는 쾌성개, 함에서 나온 세 처녀와 혼인을 맺었다는 혼인지를 가본다면 삼성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 다가온다.

 

자연적으로 생긴 포구 ‘오통’

온평리 바닷가는 쾌성개라 부른다. 세 신인이 이 곳에 떠내려온 석함을 보고 쾌성을 질렀다고 해서 그렇게 말을 한다. 그 석함이 댄 포구는 오통이다. 그러나 오통은 바닷가를 한참 헤매야 찾을 수 있다.
오통은 그야말로 특이하다. 사람의 손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천연 포구다. 축항이전 온평리 사람들은 오통을 포구로 사용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충청도 선적이 이 곳에 배를 대고 뭍으로 잠수들을 실어나르기도 했다.
전설은 세 처녀가 오통에 내리면서 말과 소도 함께 데려왔다고 전한다. 말이 석함에서 내리면서 짚었다는 발굽흔적이 오통 바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그러나 물때가 조금일 경우 좀체 볼 수 없다.

<벽랑국 세 공주가 목욕재계를 했다고 전해지는 옥탕. 바닷물이 빠지면 민물이 된다>


오통에서 북쪽으로 좀 더 가면 세 신인이 처녀들과의 상견례를 했다는 ‘왕자의 석(席)’이 나온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끔 의자형상의 바위들이 곳곳에 있다. 이 곳에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신인이 공주들을 마주보고 얘기했다고 전한다.


의자바위에서 북동방향으로 좀 더 틀면 마치 욕조와 같은 ‘옥탕’이 있다. 옷을 갈아입었다는 의미에서 ‘갱의탕’이라고도 한다. 수심이 1m를 넘으며 바닷물이 빠지면 이곳에 민물만 가득하다. 세 처녀들이 이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신인을 맞으러 목욕재계했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다. 

 

 <의자 모양을 한 바위 3개가 있다.

   ‘왕자의 석’이라고 한다.>

<1960년대까지 온평리 주민들의 포구로 쓰인 오통> 

<혼인지 동쪽에 있는 굴 내부> 


삼신이 삶의 터전을 잡다

모두 짝을 찾았으니 정식으로 가약을 맺는 일만 남았다. 석함에서 나온 괘짝과 말·소 등을 끌고 갔다는 진동산(긴 동산)을 넘어 혼인지로 향한다. 일주도로로 빠지면 혼인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혼인지는 빌레에 있는 곳임에도 일년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 곳이 바로 세 신인이 벽랑국 공주와 결혼을 한 곳이다. 물이 있다는 점은 삶의 첫째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그런데 결혼은 했지만 대체 어디서 살았을까. 혼인지에서 50m 가량 동쪽으로 향하면 해답이 나온다. 삼신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굴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토기도 나왔다고 하니 사람들이 생활했던 곳은 분명한 듯하다. 지금은 낙반현상으로 굴이 작게만 보인다. 3개의 보금자리가 형성돼 있었다고 하는데, 직접 세어보면 3개의 작은 굴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신화나 전설을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화나 전설은 당시 있었던 사실을 이야기로 풀어서 전승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정도의 사실은 담고 있다. 고·양·부 삼성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온평리 일대를 밟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신인이 된 기분을 맛보게 된다.

 

 

<혼인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