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해안 눈에 들면 불사(不死)는 한갓 꿈이다
2010년 / 12월
알고 싶은 제주 - 안덕면 대평리
박수해안 눈에 들면 불사(不死)는 한갓 꿈이다
<중국과의 인연으로 '당캐'라고 불리는 포구>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은 들은 말이다. 공자의 이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행의 참의미를 읽을 수 있다.
요수(樂水)하고 요산(樂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으라는 그 말인데, 그러려면 당연히 자연을 직접 둘러보는 자세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요산요수하는 심정으로 발길을 옮기자. 이왕 공자 얘기를 꺼낸김에 중국과 인연이 있는 마을을 찾아간다.
중국과 인연을 간직한 곳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으러 서불 일행을 우리나라로 보낸다. 서불 일행은 진시황의 욕심만큼이나 우리나라 산하 여러 곳에 흔적을 남겼다. 여수시 연도와 통영시 소매물도에 그들이 거쳐갔음을 알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제주에도 불로초의 이야기는 사실로 다가온다. 서불 일행이 정방폭포를 지나가면서 '서시과지(徐市過之)'라는 글을 절벽에 새겼다고 한다. 서불의 설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에도 서불 일행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대평리는 서불의 이야기를 포함해 중국과의 인연이 깊다. 이 곳 포구를 당캐[唐浦]라고 부르는 이유 또한 중국과의 왕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당(唐)은 중국을 말할 때 부르는 대표적인 키워드이다.
중국과의 인연이 깊은 당캐는 자연적인 포구였다. 지금은 축항하며 예전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잔잔할 정도로 겨울철 고기잡이에는 그만이다. 이 곳을 통해 중국으로 말과 소를 보냈다고 한다.
일제 당시에도 이 곳에서 정치망 어업이 성행했으며, 포구에 큰 소나무가 있어 일본인들은 마쓰미나토(松港)라 불렀다.
당캐에서 서쪽으로 옮기면 조약돌이 물가를 뒤덮고 있는 마궁굴이 나온다. 마궁굴은 말 그대로 막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골짜기를 따라 500m 가량 산책로가 나 있다. 서불의 흔적이 있다는 곳이어서 끝까지 향했다. 그 끝 지점에 절벽이 하나 등장한다. 정방폭포와 마찬가지로 서불이 이 곳을 지나면서 절벽에 글을 썼다고 하기도 하고, 서불 일행에서 낙오된 한 선비가 절벽에 글을 남겼다고도 한다. 주민들은 이 곳을 '선비기돌'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에는 글씨가 보였으나 지금은 절벽만이 설화를 말하고 있다.
병풍절벽과 박수
실제의 이야기가 지명이 되기도 한다.
선비기돌을 뒤로 하고 다시 바다와 마주한다. 좀 더 서쪽으로 향하면 눈 앞에 커다란 병풍절벽을 만나게 된다.
병풍절벽은 이 곳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대변한다. 경치는 매우 빼어나 보는 이들의 눈을 시리게 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만은 않다. 소와 말을 옮기던 '몰질' 외에는 큰 길이 없던 시절, 이 곳 대평에서 화순으로 가려면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래서 기름장사 할머니가 병풍바위를 넘어서 화순으로 가기 위해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할머니는 호미로 절벽의 바위를 콕콕 쪼아서 길을 내다 떨어져 죽고 만다. 그 뒤 대평리 788번지에 살았다는 송인생 할아버지가 그 길을 완성했다고 한다. 호미로 쪼아서 만들었다고 해서 주민들은 제주말로 '조슨다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평리에서 가장 큰길 역할을 했던 조슨다리는 해녀들이 미역을 지고 오르내릴 때도 이용됐다.
절벽 중간쯤 해안에는 박으로 물을 떴다는 '박수'가 있다. 지금도 물이 계속 나오며, 백중 때는 물을 맞으러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대평리의 나머지 얘기들
대평리는 경기가 매우 빼어난 마을이다. 여기에선 한라산 뿐만 아니라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 등 제주도의 주요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병풍절벽 동쪽에 있는 언덕의 하얀 집에서 바닷가를 볼 때는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아쉽다면 경치를 즐기기에 빼어난 바닷가 토지 대부분은 외지인이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 곳 대평리는 4․3 피해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그 이유를 당캐포구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무역상이던 이 마을 정태언 김규언씨 등이 4․3 관련 젊은이들을 그들의 무역선에 태워 일본으로 데려갔기 때문에 이 곳은 4․3의 와중에도 평온을 유지했다고 한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 대평리로 향해 지면에서 못한 이야기 보따리를 들어봐도 좋을 듯 하다.
<대평리 박수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