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차르르 차르르' 그 소리에 난 이미 네가 돼 있다

제주한라병원 2011. 11. 10. 13:30

2010년 / 10월

 

'차르르 차르르'
그 소리에 난 이미 네가 돼 있다

 

 

 

 

한없는 일상들이 머리를 짓누를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든다. 시인 류시화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고. 시인의 말마따나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하고플 때 실행하는 일이 여행이 아니던가.


알작지는 빈 들녘의 바람과 같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이면서도 친근한 그런 곳이다. 그 속에 서 있으면, 거기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제주시 서쪽으로 일주도로를 따라 가면 외도검문소가 눈에 들어온다. 그 검문소를 바로 지나 바닷가로 난 길을 벗삼으면 알작지가 눈을 간지럽힌다.

 

알작지는 아주 잘잘한 돌(작지)이라는 뜻의 제주말이다. 그러나 알작지는 원래 이름이 아니다. 이 곳 해안을 부르는 말은 ?신지방코지?다. 신지방이라는 의미는 알 길이 없으나 해안 서북쪽에 송곳처럼 솟은 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불러왔다. 작은 관탈섬 형태를 띤 이 바위는 수줍은 색시마냥 물이 빠질 때나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알작지 일대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물때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물이 들어찼을 때의 알작지를 본다면 실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신지방을 중심으로 둘러봐야 한다. 신지방의 서쪽은 흔히 말하는 '알작지'이며, 신지방 동쪽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바위군이다.


 

 

 

알작지의 소리는 옛날 그대로 이지만 규모는 많이 축소됐다. 산지축항을 하며 많이 가져갔다고도 하며, 내도 방파제를 만들면서 자갈의 생성이 끊겼다고도 한다. 간혹 이 곳을 들르는 나그네들도 자갈의 매혹에 빠져 슬쩍하기도 한다. 날아갈 듯 나풀나풀하고 동글동글한 자갈들은 내도가 아닌 다른 이들이 주인이 돼 버렸다. 오죽 했으면 조약돌 채취를 금지한다는 경고문까지 있을까.


여기가 자갈 천지임은 알작지 서쪽에 위치한 내도동 방사탑과 이 일대 돌담 모두가 바닷가 자연석으로 쌓여있다는 점에서 능히 알 수 있다.


더운 여름은 지났지만 그래도 바다에 발을 담그는 일은 가능하다. 알작지 자갈에 발을 담근다. '자락 자락' 소리가 예쁘다. 바닷물이 오가며 내는 소리도 일품이다. 물이 차 올랐다가 자갈 사이에 있던 물이 빠지면서 '차르르 차르르' 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 갖가지 모양의 바위

이 곳은 신지방을 중심으로 두 가지의 맛이 있다고 했다. 서쪽 자갈을 맛봤으며 신지방 동쪽 일대의 바위군을 바라보는 재미도 크다. 알작지의 자갈만 보고 간다면 뭔가를 빠뜨린 여행이 될 수 있다.


우선 동물을 닮은 바위를 찾아내보자. 알작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다를 쳐다보면 개를 닮은 모양의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로 내려가 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고양이와 낙타가 등장한다.


점점 재미있어진다. 바위로 둘러싸인 분지를 만날 수 있다. 파도가 아무리 세게 때려도 이 곳은 바람이 들지 않는다. 다만 바위를 건드리는 파도소리와 자갈끼리 부대끼는 오묘한 소리만 전해올 뿐이다. 잠시 명상에 잠겨도 좋다.


이 곳 바위군은 물빠짐에 따라 다도해의 느낌도 만끽할 수 있다. 바닷물이 어느정도 스며들면 징검다리처럼 뿌려진 다도해를 만나게 된다.


열반하신 무소유의 법정 스님의 얘기를 잠시해보자. 어느날 법정스님은 보길도의 유명한 자갈 해변인 예송리를 들러 몇시간동안 멍하니 자갈과 파도가 빚어내는 소리에 푹 빠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법정스님은 불가에서 말하는 오묘함에 심취해버렸다. 그런 법정스님이 알작지를 들렀다면 어땠을까.


파도가 해안을 덮친 뒤 바다로 되돌아가면서 자갈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빠진다. '차르르, 차르르'하는 그 소리를 들어보라. 법정스님은 그 소리에 무소유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바다와 한 몸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지려 욕심내지 않고, 내 것이 아닌 네 것이 되기를 원하는 것.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