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처럼 두 섬이었다가 여럿이 되기도
2010년 / 9월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 형제섬
형제처럼 두 섬이었다가 여럿이 되기도
<사진 제공=서귀포시청>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한 줌씩 떨어뜨린 게 오름이라는데, 제주도를 에워싸고 있는 섬들도 혹시 설문대할망의 작품은 아닐까? 유독 서귀포 일대 바다엔 '뚝, 뚝' 떨어진 섬이 많다. 숱한 섬. 거기엔 사람이 사는 섬 외에도 그렇지 않는 무인도도 있는 법이다. 섬 기행의 마지막 순서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앞바다에 떠 있는 형제섬으로 향했다.
무인도이지만 생명을 부르는 존재
형제섬은 사계리 마을 남쪽 앞바다에 떠 있다. 그런데 사계리 축항에서 바라보면 2개의 섬으로 이뤄진 형제섬은 하나로 보인다.
우선 이 섬과 용에 얽힌 이야기를 먼저 해보련다. 형제섬 앞에서 용 두 마리가 서로 싸움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 때란다. 용이 얼마나 큰 싸움을 벌였던지 사계마을에 피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이야기에서처럼 실제 용이 등장했을 리 없다. 하지만 섬에 용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있다. 용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용이 갖고 있는 덕목으로, 하늘을 휘저으며 구름을 일으켜 비를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그렇다. 용은 물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물을 귀하게 여기던 옛 사람들에겐 용이 신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섬은 뭍지역보다 물이 더 소중했기에 용을 이야기속에 담아낸 것이다.
형제섬은 무인도이지만 사계마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부르는 존재나 다름없다. 수백년전부터 형제섬은 삶의 터전이 돼 왔다. 마을 사람들은 형제섬에 우물을 만들었으며, 이 곳에 임시대피소를 짓기도 했다.
남과 북, 2개의 섬으로 형성
형제섬은 가까이 대하면 대할수록 새로움이 느껴진다. 사계항에서 형제섬을 오가는 어선이 있다.
형제섬은 남북으로 2개의 섬이 마주한다. 북쪽 섬은 넓고 길게 바다 위에 드리워져 있으며, 남쪽 섬은 큰 바위만 덜렁 떨어져 있다. 이들 각각의 섬에는 큰 암석이 둥지를 틀고 앉았다. 이들 바위가 마주할 때면 마치 쌍둥이 형상을 하고 있어 제주말로 '골애기섬'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길고 큰 섬을 '본섬', 작은섬을 '옷섬'이라고 한다. 섬과 섬 사이에는 새끼섬도 있다. 주위에는 암초도 여럿 있기에 보는 눈에 따라 섬은 둘도 됐다가 심지어 다섯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제섬은 하나에서 출발한다. 사계항을 떠나 형제섬으로 다가섰다. 섬의 서쪽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길게만 보이던 섬은 어느덧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섬과 섬 사이에 있던 새끼섬과 옷섬이 하나로 뭉쳐지면서 커다란 거북으로 변신했다.
하나였던 섬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자 갈라졌다. 형제섬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쌍둥이를 닮은 형제섬은 아니다.
옷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들이 똥을 뿌려둔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옷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옷은 제주말로 '올랭이', 그러니까 바다에 사는 새를 말한다. 그 새들이 사는 섬이길래 옷섬이라 이름을 붙여줬다. 검은 돌 위에 앉은 새똥은 하얀 암석으로 변해 멋스러움이 있다. 옷섬은 주상절리층도 일품이다.
포인트 찾는 강태공 발길 잦아
섬의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제주도와 형제섬이 하나 되는 또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형제섬을 가운데 두고 단산과 산방산이 포진하는 형상이 만들어진다. 이 때의 형제섬은 산방산을 닮았다.
동쪽에서 형제섬을 바라보면 붉은송이가 얹혀진 이색풍경도 있다. 송이들이 떨어질 듯 겨우 바위틈에 매달려 있으며, 그 위로 파릇파릇 생명이 움튼다.
형제섬은 최고의 낚시 포인트여서 꾼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형제섬을 여럿 되게 만드는 암초 위에는 낚시꾼들이 강태공의 손맛을 느끼려고 안달이다. 형제섬 주위에는 홍합여, 넓작여, 안떼나여 등의 암초가 있다. 이들 암초 동쪽에서 형제섬을 바라봐야 닮은 꼴이 나온다. 그제서야 형제라는 이유를 알게 된다.
넉넉잡고 30분이면 형제섬 주변을 돌며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 본섬엔 선착장이 없으나 닻을 내리고 섬으로 오를 수 있다. 이 섬엔 작은 모래사장이 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와 모래가 어우러져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이젠 여름의 더운 기운도 한풀 꺾였다. 너무 더워서 여름철 나들이를 하지 못했다면 섬으로 발길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형제섬은 변화무쌍한 자신의 모습을 항상 준비해두고 있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