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기도,혹은 귀여운 '삼인삼색'정승
2010년 / 2월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 돌하르방
무섭기도, 혹은 귀여운 ‘삼인삼색’ 장승
퉁방울 같은 눈, 주먹 같은 코. 못생긴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고,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으니 참 이상하다. 잡귀를 물린다는 장승의 겉모습은 무섭고도 못생겼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건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다.
민속학자 장주근은 장승에 이런 말을 붙였다. “장승 조각에는 마을을 침범하려는 잡귀들이 장승의 무서운 얼굴을 보는 순간 질겁하고 도망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무서운 얼굴을 새겨야겠다는 통념은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매섭거나 야무진 마음씨는 없다. 그래서 눈을 부라리고 눈썹을 추켜올려도 어딘가 푸근한 표정이 돼 버린다.”
제주의 표상이 되다시피 한 돌하르방도 매한가지다. 일종의 장승인 돌하르방의 모습도 여느 장승과 다르지 않다. 고유섭이 우리 옛 미술을 얘기한 그대로의 모습이 돌하르방에 담겨 있다. 그건 ‘무기교의 기교이며, 무계획의 계획’이다. 옛 사람들에게 미술은 생활이었고, 생활은 곧 신앙이었다. 그래서 기교를 부리지 않는 듯 표현한 것들이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최상의 미술품이 돼 있다.
옛 사람들에게 미술은 생활
돌하르방은 어느 한 부위를 부각시키지만 지방마다 표현하는 양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어느 부분을 특이하게 만들려 한 억지가 아닌 그야말로 ‘무계획의 계획’인 것이다. 그건 ‘돌하르방은 이런 것이다’는 명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지방의 이야기가 다르고, 장인이 다르기에 저마다의 색깔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헌데 궁금한 게 있다. 왜 제주에는 뭍지방에서 보이는 나무로 된 장승은 없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제주에는 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 돌로 된 장승은 제주에만 있을까. 그건 아니다. 돌로 된 장승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제주에만 나무로 된 장승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중부지방 북쪽으로는 나무로 된 장승 비율이 많으며,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돌을 깎아 만든 장승 비율이 높아진다.
유독 돌이 많은 제주도라서 마을 사람들은 돌을 다듬거나 쌓곤 했다. 돌을 다듬으면 장승이 되고, 돌을 쌓으면 솟대가 되는 것이다. 제주사람들은 나서 죽을 때까지 돌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굽이감은 올래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죽어서도 산담에 둘렸으니, 살아 있을 땐 돌과의 부대낌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돌하르방을 표현한 사료로 김석익의 「탐라기년」이 있다. 여기엔 “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돌하르방)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는 조선 영조 30년(1754년)이었다. 하지만 돌하르방이 그 시점에 세워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돌하르방은 방사탑과 아울러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전해져온 마을의 지킴이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건 지방마다 생김새나 크기가 다르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간다.
돌하르방은 지역별로 서로 달라
예전에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45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1목 2현(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성문 밖에 세워졌다는 돌하르방은 지역별로 특색이 있다. 벙거지를 쓴 모습만 한가지일 뿐 서로 다르다.
제주시(옛 제주목)의 돌하르방은 다른 곳에 비해 크며 잘 다듬어져 있다. 눈은 불룩 튀어나오게 새겼고, 코도 뭉툭하다. 생김새로 봤을 때는 재료만 돌이었지, 나무로 만들어진 뭍지방의 장승을 빼닮았다. 손도 뚜렷하고,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이 정말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성읍(옛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오뚝한 콧날이 특징이다. 손은 손가락을 새기기보다는 형태만 취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눈도 징으로 살짝 파내기만 했다.
대정(옛 대정현)으로 가면 올망졸망한 돌하르방을 만나게 된다. 제주시와 달리 위엄은 온데 간데 없고, 귀엽기까지 하다. 귀는 반달형으로 만들어 도드라지게 표현했고, 눈 주위는 테를 둘러 친근함을 더한다.
돌하르방을 수십년간 만들어온 장인(匠人) 장공익씨에게 “어느 지역의 돌하르방이 으뜸이냐”고 물었더니, 어느 한쪽에 손을 들질 않았다. 그는 돌하르방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망치질이 덜 가도 안 되고, 더 가도 안 되지. 그게 제주 돌하르방의 깊은 맛이야.”
어떤 이들은 몽골의 석인상과 제주도 돌하르방의 연관성을 강조하곤 한다. 왜냐하면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닮다는 점에서는 제주의 돌하르방이나 전북 남원시 실상사의 석장승도 마찬가지다. 목장승의 생김새도 돌하르방과 다를 건 없다. 일방적인 문화전달은 있을 수 없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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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믿음으로 태어난 산물
장승과 솟대는 왜 만들어졌을까. 언제부터 있었을까. 이에 대해 확실한 답을 말할 사람은 없다.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믿음은 있다.
아주 오래전 돌을 세운 이들이 있다. 신석기와 청동기시절, 그 때 사람들은 선돌이라는 상징물을 세웠다. 지금에 와서는 거석문화로 불리는 선돌은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었다. 그런 선돌은 세월을 거치며 돌하르방과 같은 장승이 되거나, 돌탑과 미륵으로 새로 태어났다.
솟대 신앙도 함께 이뤄졌다. 솟대는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의 신앙대상물이다. 중부지방 북쪽으로는 나무를 주재료로 솟대를 만들지만 남부지방으로 내려올수록 솟대의 새는 나무가 아닌 돌로 이뤄진다. 제주에서는 탑 위에 솟대를 얹어놓은 복합적 형태로 존재한다. 그건 바로 방사탑이다. 제주의 방사탑은 육지부의 솟대가 갖는 농경의 의미보다는 나쁜 것을 막는 ‘액막이’ 기능이 강하다.
가짜 돌하르방 판치기도
시간이 변하면 역사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의 속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돌하르방과 방사탑이 원래 갖고 있는 기능들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돌하르방은 도내 웬만한 초등학교라면 정문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그냥 세우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린이들이 아무런 사고없이 학교에 오갈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기원이 담긴다.
돌을 다듬고, 쌓는 행위는 영속적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돌하르방이나 방사탑에서 보듯 현재의 의미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건 수천년을 이어온 사람들의 속마음이 변치 않기 때문은 아닐는지.
그러나 가짜 돌하르방이 제주엔 많다. 돌하르방은 돌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제주의 유일한 보물인 관덕정 주변에 이상한 돌하르방들이 놓여 있다. 잘 살펴봤더나 돌로 만든 게 아니라 선박 소재로 잘 쓰이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제주에 지천에 깔린 게 돌인데…. 더구나 보물 앞에서 가짜가 세워져 판치다니.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