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2011. 11. 9. 11:31

2011년 / 9월

 

강의노트 2 (2)

 

  2. 학생 스스로 수업 만들기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는 벌써 무너졌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서도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을 학생들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게 합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을 지루해할 게 분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다음의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글쓰기 수업은 말 그대로 글을 써야하는 수업입니다. 그런데 전혀 글을 읽지 않는 학생들이 무엇을 쓸 수 있을까요? 읽는 능력이 곧 쓰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글을 쓰는 데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것은 그림그리기와 비슷합니다. 그림을 처음 그리는 학생에게 사자를 그리라고 하면 잘 그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자를 그린 그림을 따라 그리며 조금씩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나갑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된 글, 마음에 드는 글, 감동받은 글을 모방하면서 글쓰기에 점차 익숙해지는 겁니다. 그러니 글을 전혀 읽지 않는 학생들에게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혹 무거운 읽을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또 하나의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작년 수업 때에 학생들에게 텍스트를 읽고 간단한 감상을 써오도록 했지만, 제대로 읽은 학생도 진솔한 감상을 진지하게 쓴 학생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 텍스트 자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도 무작정 책을 읽으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방법을 하나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써온 글을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선 학생들을 나누어 조를 짰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낸 리포트를 조의 수만큼 복사한 뒤에 각 조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각 조에 리포트를 나누어 줄 때에, 그 조원들의 리포트는 제외했습니다. 자신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심사위원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보고, 그 작품들 중 가장 잘 된 작품을 조별로 한 편 혹은 두 편을 선정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점이 잘 되었는지를 꼭 발표하도록 시켰지요.


  저는 이 방법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나 과제에 별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친구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같은 주제로 썼는데 나와는 이렇게 다르구나, 저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거 의외인 걸? 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읽던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좁혀가며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을 보며 내심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결과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지루해하지 않고 듣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3. 쉬는 시간 활용하기

  저는 흡연자입니다(자랑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담배를 피우러 나갑니다. 나가보면 우리 반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한 개 학과만 수업하는 경우가 아닐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서로 멀리 멀리 떨어져서.


  이 쉬는 시간을 잘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갑니다. 제가 가면 학생들은 불편해 합니다. 마치 제 수업을 듣지 않는 것처럼 힐끔 보고 고개를 돌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마치 다른 중요한 생각을 하느라 못 봤다는 듯이 말입니다(눈까지 마주쳤으면서). 저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합니다. 이야, 우리 반 학생들이 다 여기에 있네요. 학생들이 저를 쳐다봅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다 이렇게 떨어져 있어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단번에 학생들이 친해지지 않습니다. 지난 학기의 경우 8주 정도 반복한 뒤에야 학생들이 서로 말을 텄고,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힘들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낯가리는 사람에게는 그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학생들이 수업에 대해 말하고 과제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부분들에 대해 말하고 또 상대의 학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4학년 학생은 타 학과 2학년 학생에게 대학생활에 대해 조언을 해주더군요. 그런 모습을 볼 때의 기쁨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저를 못 본 체 하는 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걸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학생들은 어떻게 했느냐, 하는 궁금증이 생기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답을 말하자면 사실 특별한 그 무엇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과 친해진 것이 묘하게 다른 친구들에게 퍼졌습니다. 몇몇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도 자유롭게 말을 하게 되자, 다른 학생들도 저를 그리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다 저와 친해진 학생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저와 친해졌습니다. 덕분에 수업분위기가 자유롭게 변했지요. 제 폐가 허락하는 한 앞으로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할 예정입니다.

 

  4. 두더지처럼……
  제가 수업을 하며 시도했던 몇 가지 방법들을 적어 봤습니다.


  사실 이 방법들이 정말 유효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제 친구들이 말합니다. 야, 그렇게까지 해야 돼? 자존심 상하게. 그러면 저는 응, 이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어떤 벽을 세우면, 벽 반대편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벽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지금까지는 운 좋게도 착한 학생들을 만나 이런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벽을 세우지 않았는데 먼저 벽을 세우는 학생을 만나게 되겠지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런 때에 저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두더지처럼 그 벽을 피해 학생을 향해 열심히 땅을 파겠습니다. 불쑥 땅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저를 본 학생은 또 다른 벽을 세우겠지요. 그러면 저는 또 땅을 팔 생각입니다. 그렇게 땅을 파고 벽을 세우고 땅을 파고 벽을 세우기를 빠르게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과거에 세운 벽 따위는 잊은 채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