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이준희사람세상

유리병 속에 담긴 이야기

제주한라병원 2011. 11. 9. 11:10

2011년 / 8월

 

유리병 속에 담긴 이야기

 

오래 전 어떤 순간이, 어렸을 때 먹었던 어떤 음식의 맛을 기억해 내는 것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 시간들은 유리병에 밀폐되어 바다로 띄워 보낸 편지처럼 기억 속에 담겨 있고, 나는 벌써 몇 번이나 읽은 편지를 유리병 너머로 또다시 훔쳐 읽듯 그 시절을 돌이킨다.

 

그러니까 그 며칠 동안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녀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잠시 눈을 뜬 채로 누워 있다가 조심스럽게 그녀가 자고 있을 침대로 다가갔다. 이불을 잔뜩 끌어와 덮고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하얀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슬며시 귀 뒤로 넘겨주면 그녀의 숨들이 내 볼에 와 부딪쳤고, 나는 그 순간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나는 잠시 그 상태로 있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에서 나왔다.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인스턴트 커피와 담배, 화장지,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녀가 마실 커피를 사기 위해 혼자 밖으로 나온 그 시간은 왠지 뿌듯하기만 했다. 슈퍼마켓에서 이것저것을 사고 검은 봉지에 담은 후, 원룸들이 밀집해 있는 그 도시를 나는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길가를 따라 유난히 붉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하룻밤 새에 누군가 화단을 손본 모양이었다. 꽃들은 밤새 머금은 습기를 그 순간에 막 뿜어내는 중이었다. 나는 건물로 들어서다 말고 건물 앞 계단에 앉아 담배 포장지를 뜯었다.


담배를 피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림자 하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태양 때문에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마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상은 마치 과도한 조명을 비춘 뮤직비디오 화면 속 같았다. 빛은 여름의 그것이 가진 강렬함을 지녔다기보다는 숙성된 봄 특유의, 마치 잘게 쪼개진 유리조각들이 반사시킨 것처럼 맑고 환한 빛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손을 들어 태양을 가려보았지만, 그 손마저도 하얀 빛에 잠겨 윤곽이 흐릿해졌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건드렸다. 그 손은 이내 내가 들고 있던 담배를 빼앗았다. 내 옆에 나란히 앉은 그녀는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였고 또 내뱉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도 햇빛에 잠겨 흐릿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나를 돌아보며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기억 속에 담아두려 했다. 우리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기어가는 버려진 개와 세상을 가득 채운 환한 빛들과 유난히 붉은 꽃과 꽃 앞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그녀와 나까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유난히 추웠던 아주 오래 전 어느 겨울밤이었다. 그녀와 나는 7층의 어느 바(bar)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벽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창밖의 거리가 내려다보였고, 우리는 그 창문으로 눈 쌓인 거리를 내다보곤 했다. 어느 흑인 여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이브 공연을 녹음한 음반이었는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소리, 그리고 그 다음 곡들이 시작되기 전 드문드문 들려오던 악기 조율 소리들이 무척이나 생생했다. 그 술집의 바텐더는 작곡을 하던 사람이었고, 절대 가요는 틀지 않았다. 나는 가끔 그 바에 들렀고, 그 후에는 바텐더에게 직접 일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고작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형식적인 친절함뿐만이 아닌 내면적 친밀함까지 전하는 방법, 술집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포즈를 통해 성격을 구분하는 방법, 그가 유난히 좋아하던 음악 취향까지.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어쩌면 지금의 내 취향이나 삶의 습관 같은 것들은 그때 형성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매번 혼자 들르곤 하던 그 바에서 그녀와 함께 만났다. 나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그녀는 전문대를 나와 여러 회사를 전전하고 있었다. 꽃가게 점원, 비디오 가게 점원, 학원 학습 상담요원, 텔레마케터까지 그녀가 했던 일은 다양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일본에 갈 거야. 디자인을 공부할 생각이니까.”


처음 그녀를 만나던 날,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머지않아 실현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돈을 모아둔 상태였고, 유학센터에서 상담도 받으며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몇 년 일본에 나가 공부를 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꿈을 실현할 현실적인 계획을 갖고 있던 그녀에게 나는 단지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 때 나는 장래에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외치며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을 빼먹으며 극장에 가거나 영화판을 기웃거리던 고등학생이었다. 세상의 체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음악이나 영화 속으로 숨어드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그 나이 때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내 관심이란 것은 남들과 달라지는 일이었고, 남들이 지키는 원칙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려 했다. 그게 내 원래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내 살갗에 닿는 압박감만으로도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그게 진짜 나라고 생각하든 아니면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든 별 상관없었다.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다가도 휙 빠져나와 영화를 보러 갔고, 학원에는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영화를 보고나면 극장 옆에 있던 이 바에 찾아와 홀로 칵테일을 마시고 음악을 듣곤 했다.


나는 남들이 모두 하는 일보다는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녀를 만난 것도 그처럼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어 했던 내 습성에 기인한 바가 컸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학습지 상담 요원이라는 신분으로 그녀가 집에 전화를 해왔고, 그 전화를 내가 받은 이후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니까.


그렇게 그녀와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그 마지막 만남 때에 그녀는 내게, 이제 정말로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종종 내 인생의 상담자가 되어주었고, 나는 그녀의 앞에서만 그나마 나를 드러내곤 했다. 그녀가 일본에 간다는 말을 들은 순간, 드디어 그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또한 거기에 집착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그때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지금 나와 있는 걸까.


화단의 붉은 꽃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없이 중얼거렸다. 이 밝은 햇살과 내 옆에 있는 그녀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가 마구 웃었다.


“너 여전하구나. 아직도 어린애 같아.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싫다고 하고,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고.”
“쳇, 또 훈계하기는……. 그나저나 여기에 언제까지 있을 건데요?”
“곧 가야지…….”
“뭐, 더 있다 가지 그래요.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제 고작 대학교 절반쯤 다닌 너랑은 입장이 다르단다.”
“일본에 갔던 일은 잘 안 된 건가요?”
“……”
“지금쯤 일본에 있었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혼잣말처럼 말하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안 갔어. 아니, 갈 생각도 없었어. 그때 거짓말 한 거야.”


내가 몇 년 동안 진실이라고 믿었던 게 부정되는 순간인데도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담배를 들고 있었고, 나는 붉은 꽃 한 송이를 따서 만지작거렸다.


“결혼을 해볼 생각이었지.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그러더구나. 조금만 기다리라고. 나는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게 오는 것처럼 나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에게 가고 싶었단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스스로 사라지고 싶었어. 그에게만 존재하고, 그 또한 나에게만 존재하길 바랐지. 어느 날, 그가 그만 하자더구나. 거기까지만 하자고. 어차피 안 되는 일이었던 거 알고 있지 않았냐면서. 그냥 그 순간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말들이며 생각, 감정들…… 불가능한 일에 대해 읊은 시처럼 단지 그것으로 충분했던 거 아니냐고. 그런데 정작 알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거야. 나는 무엇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던 걸까. 그의 이야기? 아니면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내 자신에 대해?”


“겨우 그 정도 때문에 사라졌던 거예요?”


“겨우…… 그래. 드라마 속이며 현실에 그런 이야기들이 넘쳐나니까. 그런데 참 웃긴 일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겨우, 라고. 그래서 막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겨우 그 정도, 라는 생각으로 쿨 한 척 하고. 그런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세상에 아무리 넘쳐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아픈 건 아픈 거야. 남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아프면 아픈 거고.”


그녀는 몇 년 전에 그랬듯, 여전히 상담을 하고 조언을 해주는 말투였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예전처럼 그 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결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여전히 어린애에 불과한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가 자신의 상처라고 말하는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쩌면 너 같았는지도 몰라.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서툴러서 거짓말만 하고 또 절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만 안심했는지도 몰라. 온전한 나를 보이지 못하고, 거짓된 상황,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게 될 게 뻔한, 그런 상황에서만 안심했겠지. 두려우니까, 상처 받기 싫으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햇빛에 잠겨있었다.


“그러니까 거짓말 하지 마. 이렇게 대충 살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겠다는 말 아래에 숨어서 너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마. 안 그러면 외로워져.”


“거짓말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언제든 새롭게 시작하려면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얘기가 아니야. 네가 너를 믿지 못하게 돼. 정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지.”


그 순간이 이상하게도 꿈결처럼 여겨졌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훗날 언젠가 다시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오는 순간. 그때가 바로 그랬다. 그 이후 그녀를 만난 적도, 연락을 한 적도 없었다. 마치 심하게 앓은 감기처럼 그 며칠 동안의 시간들은 분명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면서도 이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술자리에서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듯 휘청거리며 사는 어떤 후배 녀석에게 이런 말을 했다.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가보렴.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몰라.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시간은 그리고 기억은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것이겠지.


불현듯 그녀를 떠올린 나는 술자리를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는 오래 전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술집으로 향했다.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식으로 기억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은 때도 있는 것이다.


택시 안에서 잠시 잠들었던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꿈을 꾸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꿈속에서 언젠가 기억을 실어 보낸 무수히 많은 유리병 속의 편지를 읽은 듯했고, 또한 그런 유리병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모아진 어떤 방에서 그 편지들을 하나하나 꺼내 읽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유리병들은 내가 띄워 보낸 것도 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띄워 보낸 것도 있었다. 


택시기사가 나를 깨우며 도착했다고 말했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지 않고 차창으로 건물을 올려다봤다. 도시 한 가운데 서 있는 어느 건물의 7층. 어떤 기억들이 배어 있는 곳. 하지만 그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술집이 사라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시가에게 차를 돌려 왔던 곳으로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택시기사가 핸들을 꺾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는 눈을 감았다. 또다시 이렇게 하나의 기억을 유리병 안에 넣은 채로 뚜껑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