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천일평칼럼

장본인, 신드롬, 같아요 등 짜증나는 말 넘쳐나요

제주한라병원 2011. 11. 9. 10:20

2011년 / 10월

 

장본인, 신드롬, 같아요~ 등 짜증나는 말이 넘쳐나요   
 

“스티브 잡스는 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입니다. ~~토이스토리로 시작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창조한 장본인이고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통해 컴퓨터 기술을 최대한 업그레이드 시킨 장본인입니다.~~” 

 

지난 10월 5일(현지시간) 애플의 잡스가 췌장암으로 56살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어느 방송에 출연한 경제전문가가 잡스의 업적을 설명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중‘장본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바람에 속이 께름칙했습니다.

 

우리말 사전에 장본인(張本人)은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으로, 긍정적, 부정적 맥락에서 모두 쓰이고 있으나 부정적 뜻으로 쓰는 게 올바른 표기입니다.  ‘또 마을을 이토록 쑥밭을 만든 장본인은 그 청년이다.’는 맞는 말이고 ‘그녀는 그로 하여금 재기에 성공하게 한 장본인이다.’는 적절치 않습니다.
 
방송에 나온 경제전문가는 잡스를 인류 발전에 위대한 천재로 묘사하느라고 ‘장본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겠지만 '장본인'은 '대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의 중심인물로 ‘뇌물 수수 사건의 장본인’처럼 써야 합니다. 잡스를 갑자기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좋은 일에 쓰인 장본인을 대체할 만한 단어로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한달 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엄청난 국민 지지를 받자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봇물을 이루었습니다. ‘안철수 신드롬, 정당정치를 강타하다’ ‘안철수 신드롬,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다’ 등 신드롬이란 말이 신문, 방송, 인터넷을 도배했습니다. 이외에도 김연아 신드롬, 소녀시대 신드롬, 박지성 신드롬도 있습니다.

 

누군가 인기나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 어김없이 '○○○신드롬'이라는 말이 따릅니다. 그러나 신드롬(Syndrome) 은 병리적 현상이나 부정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뜻입니다. 주로 의학과 심리학에서 쓰이는 용어인 신드롬은 증후군으로 번역되며, 원인이 명확하지 않지만 병적 증상을 총칭하는 말로 대사증후군, 다운증후군 등이 그런 예입니다. 에이즈(AIDS)도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의 약자입니다.

 

사회학적 용어로는 소녀에 집착하는 롤리타 신드롬, 늙지 않고 젊게 살고 싶어하는 샹그릴라 신드롬,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인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증상을 스탕달 신드롬 이라고 말합니다. 소녀시대 신드롬이라고 표현하면 소녀시대가 무슨 병에 걸렸거나 스캔들에 말려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안철수 신드롬이라고 하면, 국민들의 안 교수 지지현상이 잘못됐다는 전제가 깔린 뜻입니다. 긍정적이고 열렬한 집단적 지지나 경향은 열풍, 열광(fever)이나 현상(Phenomenon)이라고 써야 합니다. 따라서 안철수 신드롬은 안철수 현상으로, 소녀시대 신드롬은 소녀시대 열풍으로 바꿔 쓰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상당히 많습니다.

 

‘같아요’라는 말은 적절치 않게 쓰여져 혀를 차거나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습니다. “즐거운 것 같아요””재미있는 것 같아요””맛있는 것 같아요””아픈 것 같아요””예쁜 것 같아요”…. 자기가 즐거우면 즐겁다고 해야지 ‘~같아요’가 왜 붙습니까.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말하고 자신이 보고 예쁘다고 느꼈으면 예쁘다고 표현해야지 애매하게, 다른 사람의 동의도 구해야 합니까.

 

‘같아요’라는 말은 다른 것과 비슷할 때, 정확하지 않은 추측을 할 때 쓰는 말인데 요즘 ‘같아요’는 대부분 쓸데없는 씨끝(어미)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갑자기 많이 나타난 표현으로 젊은이들, 여성들이 특히 많이 사용합니다. 자신이 없고 무언가 피하고 싶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분명치 않게, 다른 이의 동의도 사면서 기대고 싶은 말로 들려 짜증도 납니다. 

 

마찬가지로 흔하게, 자주 쓰는 ‘너무’라는 부사는 지나치고 넘쳐서 오히려 더 못함이란 뜻으로 부정적으로만 쓰여야 합니다. 절대로 강조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맛있어요””너무 잘해요””너무 예뻐요””너무 감사해요”등으로 긍정적이고 감사하고 칭찬하는 좋은 의미가 담긴 말에도 ‘너무’를 갖다 붙입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대홍수가 났다””너무 세게 때려서 큰 상처를 입었다”처럼 부정적인 문장에만 써야 맞습니다.     


 더 한층 한숨이 나올 일은 ‘너무’와 ‘같아요’ 두 가지 잘못을 동시에 쓰는 말입니다.

 

 “너무 예쁜 것 같아요”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잘못 쓰고 있는 용어나 문장을 우리말을 올바르게 알려주어야 할 방송에서도 자주 사용하고 있어 더더욱 문제입니다. 연예인들, 개그맨들은 물론 심지어는 바로쓰기에 모범을 보여야 할 방송진행자와  사회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있어 일반인들은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 최고인기 종목으로 자리잡은 야구에서도 전문용어를 잘못 쓰는 사례가 많습니다. 수비를 하다가 한꺼번에 투아웃을 시키면 방송에서 캐스터나 해설위원은 ‘더블 아웃!’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것은 엄연히 더블 플레이(Double Play)라고 해야 합니다. 수비팀이 연결된 동작으로 2명의 공격팀 선수를 아웃시키면 오직 ‘더블 플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더블 아웃(Double Out)이란 말은 10여년 전부터 어디서, 누가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본식 용어로 더블 플레이를 겟 투(Get Two)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이 말을 없애자고 방송계에서 나오더니만 이상한 ‘더블 아웃’이란 용어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프로구단과 계약을 맺고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를 일컬어 ‘용병’이라고 합니다. 이는 계약 관계에 주종 관계가 포함돼 있어 적절치 않은 단어입니다. 군대용어인 용병(mercenary)은 계약조건에 따라 아군이나 적군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소속을 바꾸는 군인입니다. 그들도 스포츠 구단의 팀원임을 인정하고, ‘함께 간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용병 가르시아’보다는 ‘외국인 선수 가르시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외국의 많은 언어학자나 예술가들이 우리말,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이라는 칭찬과 연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들은 우리말을 소홀히 다룬다는 게 말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