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의료계 풍광
아리송한 의료계 풍광
최근 의대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 국민들과 환자들은 걱정과 불안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무쪼록 의정간의 소통과 이해관계 조정이 잘 이뤄져서 해결의 물꼬가 좋은 방향으로 흐르길 기대해 본다.
빅5병원 위기 이번 일로 불거진 눈여겨 볼 대목 가운데 하나는 대형 병원들의 취약한 구조적 시스템이다. 평소 국민들로부터 크나큰 신망을 받아온 소위, 대한민국 빅5라 불리는 대형병원들이 전공의 이탈로 의료 시스템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인데 전공의 구성비가 너무 높아 온전한 의료서비스를 감당 할 수 없기에 이르렀고, 의료 공백으로 외래 환자까지 줄면서 심각한 경영난까지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국 각지의 환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지역필수의료의 위기를 부채질해 온 빅5병원들이 전공의가 빠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기력해 졌다는 사실이 놀랍고 아리송할 따름이다.
제주 지역의료의 버팀목, 제주한라병원 이처럼 빅5병원들이 휘청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크고 작은 병원의 많은 의료진들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24시간 응급실,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제주지역도 당초 염려했던 것 보다 큰 혼란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의료수급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환자의 중증 정도에 따라 치명적일 수 있는 응급의료와 필수의료 시스템이 아직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제주한라병원은 의료 위기 상황 이전부터 중증 뇌질환과 심혈관 등 지역 필수의료체계 역량 강화를 위해 첨단의료기기 투자에 주력해 왔고, 수술과 시술을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확보해 왔다. 또한 지난 2월부터는 정부와 제주도가 추진하는 응급의료지원단 위탁관리를 맡아 지역응급의료를 총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하여 중증 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공의료의 올바른 이해 정부는 이번 의대 증원을 의료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무너져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취지를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의대증원에 앞서 공공의료체계의 탄탄한 토대위에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지역 필수의료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일반적으로 공공의료는 공공병원이 담당하고 이끌어가는 것으로 곡해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공공이라는 이름이 빚어낸 아리송한 상식일 뿐이다. 공공의료체계는 공공과 민간의 쌍두마차에 의해 조화롭게 굴러간다. 이것이 대한민국 공공의료체계의 법 정신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정부가 공공의료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공공병원 일변도로 지원한다면 그것은 법 취지를 무색케 하는 일이자 지역의료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역필수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지원은 공공이나 민간 구분 없이 공정한 원칙과 기준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지역필수의료체계 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 내 의료를 완결 지을 수 있다. 이번 의료사태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상급종합병원, 무엇이 우선인가? 아리송한 일 또 하나, 최근 들어 부쩍 언론을 타고 도는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관한 이야기도 지금쯤은 그 진의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항간의 주장처럼 제주에 상급종합병원이 지정될 경우 병원의 의료역량이 순식간에 발전하고 의료서비스가 크게 달라질까? 그런 논리라면 전국의 모든 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돼야 한다. 의료 역량은 하루아침에 오이 자라듯 크는 것이 아니다. 병원의 의료 역량은 리더십의 결단과 의지에 따라 인적, 물적 투자가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확보 가능한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역시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심사 기준에 따른 공정한 평가로 결정된다. 즉 병원의 의료수준과 실적, 첨단 의료기기 투자 상황 그리고 필수의료를 책임질 수 있는 의료역량의 유무가 크게 좌우한다. 제주에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할 경우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 구분 없이 공정한 심사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인 이야기이다.
아무튼 이해관계를 둘러싼 의료계의 속사정은 너무 난해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잘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안개가 잔뜩 낀 먼 산의 풍광을 보는 듯 아리송할 따름이다.
송정일 의료법인 한라의료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