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제주라는 특수성을 자각할 때 지역성의 실체가 생겨난다.』

제주한라병원 2023. 7. 3. 13:44

 

[나는 제주건축가다] <17> 빌딩워크샵건축 김병수

 

『제주라는 특수성을 자각할 때 지역성의 실체가 생겨난다.』

 

[ 건축가 김병수 ]
 
경남 거창이 고향이지만 이제는 고향을 떠난 삶이 더 길어졌다. 제주 의 자산에 무척이나 관심을 두고, 제주 사람보다 더 제주를 탐색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타미 준을 제주를 가장 잘 해석한, 제주다운 건축물을 선사한 건축가로 꼽는다. 이타미 준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수·풍·석 뮤지엄’. 거기서도 ‘바람 미술관’이 이타미 선생의 건축적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풍 미술관’에서 나무 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마주하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실제 그는 이타미 준 선생과 4년간 작업을 한 인연도 있다.
오랜 마을이 좋다. 제주 건축 자산 활동을 하면서 제주의 가치를 더 알아가고 있다. 올레가 살아 있는 마을이나 돌담이 살아 있는 마을. 어쩌면 가장 원초적 형태의 제주 모습에 끌리고, 또 끌린다. 건축 자산 활동은 그에겐 제주의 역사를 아는 과정이고, 제주의 속을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재미는 덤이다. 제주 사람보다 더 골목의 가치에 몰두하고, 올레가 있고 퐁낭 아래 모일 수 있는 가치를 더 알리고 싶어 한다.

 

■ 제주의 풍토성이 살아 있는 공간을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아니면 제주에서 끌리는 공간은 어디에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오래된 마을이 좋다. 올레와 돌담이 살아 있고 고즈넉한 퐁낭(팽나무)이 자리 잡은 마을은 세월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고내리, 신촌리, 온평리 같은 마을을 걸어 다니면서 빈집도 둘러보고 올레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경남 출신인 내가 살던 동네는 폭낭은 아니지만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은 20여 년 전에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제주는 이런 소중한 풍광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제주 풍토를 가장 잘 이해한 건축물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현대 건축에서는 이타미 준 선생님의 ‘바람 미술관’을 꼽고 싶다. 주제 자체가 제주를 대표하는 바람을 전시하는 미술관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제주현대미술관’도 제주다운 공간을 많이 담아낸 훌륭한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슬며시 내려가며 앉혀진 방법, 현무암의 현대적 해석, 스케일감 등 배울 점이 많다.

 

지역성이란 무엇이며, 제주에 어울리는 지역성을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누군가는 올레를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풍요와 여유로움을 이야기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역성이란 이런 다양함을 내포하는 것이다. 건축을 하는 우리들이 제주라는 특수성을 자각하고 이를 각자의 건축에 반영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역성에 대한 실체가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공통적으로 생각해야 할 요소는 제주도의 자연환경, 특히 기후다. 육지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만 이곳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후라고 생각한다. 더 따뜻하고, 비오는 날이 많고, 가을과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이런 기후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자신의 건물에 반영할 때 우리는 지역성이라는 실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살아보니 그런 날씨의 영향으로 의외로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고 느껴진다. 비바람 치는 주말에 집에만 머물곤 한다. 그래서 제주의 주거에는 처마밑 공간이나 선룸(sun room) 같은 반 외부공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 공간들이 주거에 많이 생겨날 때 우리의 삶이 더 풍족해질 수 있다고 본다.

 

■ 제주에서 가장 설계하기에 편안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들이 있을 때는 설계가 쉽고 재미있다. 내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는 경우이다. 언제나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광경이고, 이 기쁨을 건축주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설계하기 어려운 곳은 오래된 마을 안이다. 아무래도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기존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스케일의 것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신경 쓰이고, 조금이라도 마을과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

 

■ 도심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고층아파트도 차츰 생기고 있다. 제주 도심에 맞는 건축물은 어때야 할까?

제주 도심이 한국의 여타 다른 도시와 다른 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야자수로 대변되는, 겨울에도 상록활엽수로 푸르른 조경, 다른 하나는 현무암과 현무암을 이용한 건축물이다. 여기에 바로 단서가 있다. 내가 바라는 미래 제주 도심에 어울릴 건물은 ‘그린 빌딩’이다. 이곳은 따뜻한 기후이고 그래서 도심에서도 초록이 우거질 수 있는 곳임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도시 확장을 이야기하기 전에 선행되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보행환경이다. 제주가 사람이 주인인 거리가 되려면 보행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읍면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대중교통으로 환승시키기 위한 광역 주차장을 만들고, 제주시 내부에 트램과 같은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마이너스라고 하더라도 제주의 미래를 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사람들이 걷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비바람이다. 이에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건물의 1층을 뒤로 밀어 아케이드를 조성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