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집이 들어설 곳과 그 주변을 생각해야 한다.”

제주한라병원 2023. 5. 31. 13:18

 

[나는 제주건축가다] <16> 비앤케이건축 고이권

 

집이 들어설 곳과 그 주변을 생각해야 한다.”

 

 

[건축가 고이권]

긴 수평선. 제주에서 만나는 매력 포인트다. 바다만 끝없이 펼쳐진 곳도 있고, 수평선 위에 섬이 살짝 앉은 곳도 있다. 제주도라는 섬의 또 다른 섬, 우도와 같은 섬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아주 커다란 육지를 닮은 제주 본섬이 등장한다. 그렇듯 갖가지 매력을 지닌 수평선. 아름다움은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듯 그로부터는 수평선이라는 그 단어에서 수평선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해가 저쪽으로 넘어가며 석양으로 물들 때는 더 그렇다. 석양빛. 아주 붉게 하늘을 칠할 때도 있다. 페터 춤토르의 <건축을 생각하다> 표지는 무척 붉다. 아니, 빨갛다. 그래서 눈에 더 띈다. 그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아름다움이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거기에 담긴 생명력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우린 추억의 장소를 통해 아름다움을 읽어 들인다. 추억의 장소는 학습을 받아 마음에 저장된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차곡차곡 내면에 쌓여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주도는 해안에서 한라산까지 북쪽은 완만하게 올라가고 남쪽은 다르다. 동쪽은 오름 군락지이고 서쪽은 평원이다. 토질도 각각 다르다. 제주에 있는 건축가들은 동서남북 건축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할지, 건축가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는 경사 지형이 많다. 그리고 한라산이라는 중심적인 공간을 기준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채광 방향과 조망이 다르다. 다른 조건 속에서 어떤 지역에 건물이 들어섰을 때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형적인 조건에 잘 맞추어지고, 주변 환경에 거스르지 않고,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땅에 앉히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어려운 것 같다. 더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합리적으로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건축 작업을 할 때 항상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합리적이라는 건 경제적 문제와도 결부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다. 프로젝트별로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땅을 많이 이해하려 한다. 그 땅에 가장 합리적이고 안정감 있는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것은 스케일도 포함된다. 건축주가 잘못 판단하고 있으면 그 땅에 적합한 스케일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때로는 예산을 고려해서 건축주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설명을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에 좀 더 보완을 한다면 지금부터 나 자신을 숙성시켜야할 것 같다. 숙성되는 과정을 통해 건축의 본질에 대해서 탐구하는 자세와 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눈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건축을 만드는 작업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제주도 전체로 봤을 때 작업하기 쉬운 곳도 있고, 어려운 곳도 있을 텐.

제주에서는 바다 조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제주시 지역 중 남북으로 경사가 있는 지형의 대지를 설계할 때 조망 방향과 채광 방향이 반대일 때가 있다. 이런 때가 난감하다. 조망과 채광을 모두 만족시키는 합리적 방법이 뭔지 늘 고민한다. 그건 제주 지형의 특이성이다. 그런 불합리하고 어려운 조건일 때 설계는 더 재밌다. 고민을 많이 한 만큼 해결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바람이 센데, 특히 더 센 지역이 있다. 그런 지역에서 건축은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항상 그렇진 않지만 가벽을 세우는 디자인을 하곤 한다. 들이치는 바람을 막는 수단이면서 시선을 차단하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가벽을 세워서 건축 요소로 활용하곤 한다. 삼화지구에 설계한 엘케이 드림하우스(제주시 건주로733)’에서도 가벽을 활용하여 마당을 보호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해안가 근처에 건축 설계를 할 때 고민은 역시 바람이다. 직접적인 바람도 문제이지만 바람과 함께 묻어오는 짠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철자재를 많이 노출시키지 않고, 매스를 너무 크지 않게 분절해서 적용하는 방법, 가벽 등을 만들어 직접적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막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설계를 하려면 우선 기후에 대한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페터 춤토르는 스위스의 발스 온천장을 설계하면서 그 동네에서 나는 규석을 켜켜이 쌓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듯 지역에서 나는 재료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지역적 재료인 제주석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제주석은 철분을 가지고 있어서 해안 지역에 있는 건축물에 써야 되는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제주석은 물을 머금으면 습한 성분이 남아 있어서 볕을 받지 않는 부분에는 이끼도 낀다. 그러면서 제주석을 사용할 때 지역적 상황을 고민하게 된다.

제주 풍토를 이해한다는 건 바람과 기후를 이해하는 것이다. 바람과 기후에 대한 이해는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의 바람과 기후를 체험하며 사는 제주 건축가들은 늘 그런 고민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제주 건축가들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결과물로 만들어내고자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