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

내 생(生)에서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제주한라병원 2023. 5. 31. 13:09

대정향교 동재 전경

 

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

 

[편집자 주]

이번 호부터 연재하는 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최애(最愛)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그것의 가치는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이며, 제주 문화의 기저에 흐르는 돌, 바람, 여자, 말, 물(가뭄)의 5多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밀의 정원에 쌓인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의 지평을 열어 우리 삶의 소중한 모습을 복원하고자 한 기획이다.

 

 

프롤로그

내 생()에서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는 내 존재(存在)를 모른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지만, 하루해가 빨리 지는 것을 한탄하면서 생의 짧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일을 한다. 세상은 매일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놓고 그 대답을 미처 확인하지도 못한 채 잠들게 만든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미완이다. 마치 싸락눈 위로 다시 내리는 함박눈처럼 반복되는 의문이 쌓이지만 그래도 내일의 햇살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다.

이백(李白)나에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물어서(問余何事栖碧山) 그냥 웃기만 했더니 마음이 한가롭다(笑而不答心自閑)”라고 했다. 우리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일을 만날 수 있음에 행복해 한다. 어디에 있건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이상향을 꿈꾸게 한다. 내 앞의 현실에 충족하지 못해 불안해하면서 사랑과 명예, 부귀와 장수에 대한 유토피아를 갈망하고 또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욕망의 결핍에 시달리는 존재여서 이백처럼 마음이 한가롭지가 못하다.

대정 향교에는 양반 자재들이 공부하는 동재(東齋)라는 집이 있다. 그곳에 추사가 쓴 의문당(疑問堂)이라는 편액이 무척 인상적이다. 대정향교는 지방의 중등학교 정도 되는 교육기관이고 동재는 대정의 학생들이 숙식하며 공부하는 집이다. 동재의 현판 의문당이란 말인즉슨, “궁금하면 물어라!”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집이라는 뜻이다. 물음을 던지는 것은 비단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탐구 행위일 것이다. 우리는 평생 세상이라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로서 삶에 필요한 것을 묻고 또 묻게 된다. 그것의 답은 잘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로 구분되겠지만 과연 어떤 삶이 잘 산 삶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저마다 가치관이 다를 것이다.

별처럼 많은 우리네 삶의 질문에는 백인이면 백 가지 답(百人百答)이 있다. 다양한 직업에다 각자 삶의 경험이 상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다르다. 성경의 말처럼 우리는 네 이마의 땀으로 네 먹을 것을 벌어야하는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대답을 찾는 과정이란 바로 너는 네가 되어라는 말로 귀결되지만 늘 자신을 찾지 못한 우리는 가 되기 위해 고뇌하며 해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인간은 경험으로 완성되고 존재의 시간이 다하면 잊힌다. 사실 생()이란 하루하루 나아가고, 나아지고자 하는 것의 연속이 아닌가! 마치 빈 보따리를 들고서 점점 그것을 채워가며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우리가 생존이 유리한 쪽으로 진화해 온 것처럼 말이다. 이 또한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환경에 잘 적응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인생은? 길어야 100년 남짓이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지난 것들을 그리워하다 마침내 사그라진다. ‘내가 없으면 자기 앞의 세계도 없으므로…….나는 지인들에게 단지 기념비성(monumentality)으로만 기억된다.

 

도잠(陶潛, 365~427)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했던 시인이다. 그는 말한다.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 올 일은 바르게 좇을 수 있음을 알았다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실로 길을 잃었으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으니,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소(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의 연속일 것이다. 한 사회의 도덕(moral)이나 정의(justice)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에게 이로움이 있으면 기우는 속성이 있고, 밥이 나오는 곳에 마음을 기대게 된다. 이번 길 가는 그대의 물음은 따스한 감성으로 제주문화에 다가서려는 기획이다. 인생에서 그대의 물음은 사실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사건에 참여하여 그 자리에 임하는 그대야말로 유일한 존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의문당 복원
길 떠나는 바람에게도 영혼이 있다.
김만일 문석인

 

필자 김유정은 1961년 최남단 모슬포 출생으로 제주대 미술교육과, 부산대 예술학 석사,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