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나눠 쓰는 것’이기에 겸허한 자세를

[나는 제주건축가다] <14> 영건축 강주영
‘자연은 나눠 쓰는 것’이기에 겸허한 자세를
[건축가 강주영] 성산읍 고성리가 고향이다. 제주를 떠나 살다가 다시 터를 잡은 곳은 다름 아닌 고향 마을이다. 도심지에서 건축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도심이 아닌 고향, 이른바 ‘촌’이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터는 어릴 때 놀던, 학창시절 동무들과 소풍을 간 장소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首丘)’의 심정은 향수병을 부르고, 진한 기억을 풍긴다. 그 진한 기억을 담아 설계에 쏟아 붓는다. 놀던 터는 지역 사람들의 땅이 아니라 대자본에 넘긴 섭지코지였다. 그곳에는 아빠랑 낚시를 하던 기억도 담겼다. 진한 기억은 커서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가 되어 아빠에게 낚시 도구를 선물하는 딸이 되곤 했다. 소풍을 가던 섭지코지는 다른 친구들에게 환상의 땅이었다. 한때는 놀던 땅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섭지코지 둘레길이 조금 열렸다. 그렇다고 예전 소풍 때처럼 섭지코지에서 마음 놓고 뛰놀진 못한다. 위안이라면 동네에서, 고향에서 건축 활동을 하는 자신을 볼 때다. |
■ 섭지코지는 개인적으로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제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제주도라는 땅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귀포 건축포럼을 몇 년 했다. 그전에는 제주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건축포럼을 하면서 이해되지 않은 걸 목격했다. 경관의 사유화이다. 모두가 같이 즐겨야 되는 곳임에도 사유화된다. 내 건물이 주변 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없나, 다른 이가 자연 경관을 즐기기에 내 건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나 고려해봐야 한다. 제주도 땅의 의미는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과 자연, 사물(건축도 포함한다.) 그리고 그 자연을 느끼고자 오는 사람들 모두에게 있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과 자연, 사물들이 서로 간에 불편함 없이 제주의 땅에서 공존해야 한다.
■ 제주도라는 땅의 전체적인 가치를 정리해준다면
자연은 같이 나눠 쓰는 것이다. 한 개인이 독점할 수 없다. 다 같이 나누는 자산이기에, 자연을 쓸 때는 겸허한 자세여야 한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는 생각으로 제주도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다니던, 나에게 공기 같았던 섭지코지. 그곳을 떠났다가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하며 다시 한 번 보게 되고, 대학에 들어간 뒤 제주에 와보니 제주의 가치를 더 알게 되었다.
■ 성산이라는 곳은 어떤가?
성산일출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본인 집에서 직접 보기 위해 건물을 서로 높인다. 도시형 생활주택이 성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버티고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아쉽다.
이 지역에 나 홀로 아파트가 있는데 남향보다 동북향이 제일 비싸다. 성산일출봉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온 분들은 방향이 좋지 않아도 일출봉을 보려 한다. 제주도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남향, 동향, 남동향을 중시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성산 일출봉을 보고 싶어 한다.
■ 건축가로서 지역성을 이야기해보자.
논문을 쓰면서 느낀 건 제주도가 굉장히 창의적인 곳이라는 점이다. 농촌주택개량사업을 하던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 때 표준설계도가 있었다. 제주도는 그 표준설계도와 달랐다. 제주도만의 독특한 걸 만들었고, 제주도만의 색깔이 있었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의 현명함을 알았다. 예를 들면 굴뚝이다. 육지의 표준설계도를 보면 굴뚝은 집 밖에나 뒤에 숨어 있다. 제주도는 정면에 의장적 요소로 쓰였다. 건물 양쪽으로 굴뚝이 있다. 굴뚝 바깥은 타일로 치장을 하고, 숨기고 싶은 걸 전면에 내세웠다. 비가 많이 오니까 처마의 테두리를 만드는데, 이것도 의장적 요소를 지녔다.
바람, 비, 햇빛 등의 자연적인 요소들을 선배들은 잘 활용했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서 이런 영향을 덜 받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 못한다. 자연을 반영한 건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처마를 길게 내거나, 창문과 비에 대한 생각, 바람에 대한 생각, 남동풍인지 북서풍인지,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을 한다. 아무튼 예전부터 우리는 그런 걸 건축에 담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