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카스티야 왕조가 사랑한 중세의 도시

제주한라병원 2022. 11. 30. 14:26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로마 수로교.

 

스페인 세고비아

 

대략 1세기 전후에 세워진 로마 수로교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

고색창연한 구시가지 보면 옛 사람들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1492년 스페인(에스파냐)으로 통일되기 이전까지 세고비아는 로마 제국의 식민도시이자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세계문화유산 도시답게 세고비아는 중세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500여 년이 된 대성당,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 수로교, 월트 디즈니의 만화 영화 ‘백설 공주’에 등장하는 알카사르, 세월이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골목길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22명의 에스파냐 왕과 왕실이 가장 좋아한 알카사르 성(백설 공주 성)

 

 

중세의 도시, 세고비아 여행은 현지인과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아소게호 광장에서 시작하는데, 광장 한가운데 그 유명한 높이 30m, 길이 728m에 달하는 로마 수로교가 있다. 한눈에 담기에도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로교의 건축 시기는 1세기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수로교에는 시기를 알 수 있는 문헌적 기록이 전혀 없어 20세 초까지 도미티아누스 황제(AD 81-96)가 건설을 명령했고, 98년에 완공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2016년에 트라야누스 통치 기간인 112년 이후 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 초기인 117년 이후에 건설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학자들에 의해 보고되었다.

대략 1세기 전후에 세워진 로마 수로교는 도시에서 북쪽으로 17km 떨어져 있는 리오 프리오 강에서 고지대인 세고비아 중심지로 끌어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수로교는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에 세운 것 중 가장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67개의 2단 아치 형태에 2만 4,000여 개의 화강암 덩어리가 사용된 수로교는 네모나게 다듬은 돌을 시멘트나 회반죽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고, 오직 돌의 무게와 중력 그리고 수학적 계산을 통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미세한 경사각을 만들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수로교 전체가 도시 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탁월한 로마인의 토목 기술에 “아!”란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이 건축물은 1800년대 말까지 상수도관으로 계속 사용됐다.

웅장하고 거대한 수로교를 등지고 곰삭은 골목길을 따라 언덕으로 10여 분 정도 오르면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세고비아 대성당이 눈앞에 나타난다. 스페인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카를로스 5세의 통치 기간인 1525년에 시작해 1577년에 건축되었다. 세고비아 시민들의 영혼의 안식처로 불리는 대성당은 높이 105m의 첨탑이 있고, 성당 안에는 박물관을 비롯해 종교화, 조각상, 공예품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춤과 노래 일 년 내내 울려 퍼지는 세고비아

세고비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대성당과 그 앞에 있는 마요르 광장 주변은 현지인들의 생활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다. 특히 매주 목요일마다 마요르 광장에서 벼룩시장처럼 장터가 열리는데, 이때 사고파는 물건들을 보면 세고비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다. 만약에 여행하는 날짜가 목요일이 아니어서 장터를 못 봤다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성당과 광장 바로 인근에 월트 디즈니가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 때 영감을 받은 알카사르가 있기 때문이다.

에레스마강과 클라모레스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거대한 바위산이 있는데, 바로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에 세워진 알카사르는 배의 뱃머리와 같은 모양 덕분에 스페인에서 가장 독특한 알카사르가 건축되었다. 이 알카사르는 원래 11세 이후 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요새로 사용되었지만, 13세기부터 22명의 에스파냐 왕과 왕실이 가장 좋아하는 거주지였다. 한때는 주립 교도소, 사관 학교 등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고, 현재는 군사 기록물을 보관한 국립문서보관소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헌적으로 알카사르는 스페인의 역사와 삶의 궤적을 함께 한 곳이다. 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1492년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과 관련된 일화이다. 1474년 12월 12일, 마드리드에서 이사벨 여왕의 이복 오빠이자 카스티야의 왕, 엔리케 4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스페인 전역에 퍼지자, 이사벨과 그의 남편인 페르디난트 2세는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난공불락의 알카사르 안으로 피신했다. 그다음 날 세고비아 의회의 지지를 받은 이사벨은 마침내 카스티야 왕조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성안은 밖에서 볼 때보다 한층 더 아름답고 황홀하다. 태양 광선이 눈부시게 쏟아지면 화려하고 섬세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천장과 벽에서 춤을 추고, 단아하고 우아한 문양의 장식품과 고가구들이 방 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성을 톡톡히 빛내고 있다. 특히 방과 복도에 꾸며져 있는 아라베스크 양식의 창 너머로 세고비아의 도시 풍광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또한 내부 곳곳에 갑옷, 투구 등 전쟁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에 험난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절하게 싸웠던 곳임을 짐작게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알카사바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파수를 보는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어졌다가 14세기 중엽에 들어서서 아름다운 성으로 본격적으로 지어졌고 그 후 증·개축을 통해 완전한 백설 공주의 성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전쟁을 많이 겪으면서 조금씩 훼손되고 설상가상으로 화재까지 일어나 초기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1882년부터 재건축이 시작되어 1940년대에 이르러 아름다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화재 이전의 무데하르 양식으로 완벽하게 재건된 것이다.

성안에 있는 여러 개의 방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디자인과 배치를 모방한 ‘왕의 전당’과 이탈리아 화가 바르톨로메오 카르두치가 그린 ‘동방박사 경배(1600)’가 있는 예배당이다. 이곳은 왕과 왕실의 결혼식을 비롯한 여러 행사가 열렸는데, 1570년 펠리페 2세가 조카인 오스트리아의 안나 폰 외스터라이히와 네 번째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성의 백미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가파른 156개의 계단을 올라 발아래로 펼쳐진 세고비아 구시가지와 페날라라산(2,469m)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스티야 후안 2세(이사벨 여왕의 아버지)의 탑’이다. 15세기 초에 건축된 요한 2세의 탑은 이슬람 예술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의 전통 건축이 혼재된 무데하르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알카사르 옥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과 고색창연한 구시가지를 바라다보면 이곳을 사랑한 카스티야 왕과 시민들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알카사르 옥상에서 바라다본 세고비아 대성당과 구시가지 풍경.

 

   

높이 30m, 길이 728m에 달하는 로마 수로교
여행자들의 꿈과 희망이 스민 아소게호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