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의 건축
[나는 제주건축가다] <9> 마음건축 조진희
섬의 규모에서 흘러온 삶과 문화가 제주인의 생활에 녹아 있어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소중하나 제주의 특별함은 좋은 자연환경
건축가 조진희는...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 ‘침묵’에 존재하는 ‘빛’을 더하는 작업이다. 루이스 칸의 말마따나, 루이스 칸의 작업에는 동양적 사유가 녹아 있다. 마음건축도 ‘마음’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건축에 사유를 담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루이스 칸을 좋아한다. 철학적 이야기를 하는 루이스 칸을 닮고 싶은가 보다. 낯선 땅 제주에 정착했고 제주의 도심을 벗어난, 제주에서도 또 다른 지역인 ‘애월’에 둥지를 틀었다. 이유는 한적한 곳이어서다. 작업실에 앉으면 바닷가가 눈에 들어오고, 제주의 랜드마크인 한라산도 그의 눈에 비친다.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작업은 ‘영화’였지만 그에겐 건축가의 피가 흐른다. 아버지는 서울·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한 한옥 목수였고, ‘영화’와 ‘건축’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1순위로 건축을 꼽았다. 그렇다고 영화와 헤어진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도 한다. 건축 설계를 하며 수십 번 고치듯, 시나리오도 수십 번 퇴고 과정을 거친다. |
- 지역성 이야기를 먼저 해봤으면 한다. 제주의 지역성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제주에는 끝이 있다. 땅의 끝이 있다. 끝이 있어 좋다. 제주 도심에 서 있으면 육지의 평범한 도시와 느낌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차를 타고 바닷가로 가면 짧은 시간 안에 땅의 끝,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라산을 볼 수 있다. 제주도의 지도를 보거나 기억해낼 수 있다면, 자신이 있는 위치와 한라산과의 거리 관계를 상상하여 제주도의 전체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땅의 끝을 땅 위에 서서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제주도 지역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섬인데 작지도 않고, 아주 대단히 크지 않은 섬, 그 규모에서 흘러온 삶과 문화가 제주인의 생활에 녹아 있을 것이다.
- 제주에서 스스로에게 끌리는 공간은 어디에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애월 환해장성(해안선을 따라 쌓아놓은 성벽) 일대이다. 많은 곳이 그렇겠지만 이곳도 계속 변한다. 변하는데, 내가 경험한 시간에서 검은 돌과 초록빛, 바다, 하늘, 바닷소리, 그런 것들은 한결같아서 좋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제주 바닷가에 흔한 흉물은 양식장 건물이다. 해안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애월 환해장성 앞에도 양식장이 있었지만 사라졌다. 자연이 다시 살아났다. 초록 풀은 더 많아졌다. 그런데 자연은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체불명의 구조물이 다시 애월 환해장성 인근에 등장했다. 모든 게 그대로 있지는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자연과 어울리는 그런 건축행위를 하느냐가 문제이다. 단지 변하지 않는 건 바다와 하늘, 검은 돌과 거기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가 아닌가.
- 제주도라는 땅은 무척 중요하다. 제주라는 땅은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
제주, 어떻게 보면 도심이 있고 외곽지역이 있다. 도심은 육지랑 비슷하다. 사람이 사는 곳은 도시든 외곽이든, 육지든 제주든 다 소중하다고 본다. 제주도가 비교적 특별하다고 보는 건 자연환경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곳과 비교하더라도 제주도는 좋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게 제주의 특별함이다.
- 지역 건축가 역할에 대해 말해보자. 왜 지역에 살고 있는 건축가들이 역할을 해야 하고, 다른 지역 건축가들과는 어떤 차별성을 지녀야 하는가.
실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그 지역을 보면서 느끼고 잘 알고 있다. 그 땅과 주변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내가 사는 애월은 자연환경은 좋지만, 점점 도시화되고 있다. 도시화가 좋든, 나쁘든 그걸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내 딸과 아들이 오가는 곳이고, 매일 보는 땅이기에 책임감이 더 작용한다.
- 제주에서 건축 활동을 하다 보니 아쉽다거나 개선할 부분이라면.
아쉬운 점? 개선할 점? 제주도라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생활한 분들 가운데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물론 아닌 분들도 많다.). 그게 좀 아쉽다. 설득해야 하는 게 내 몫인데, 잘 될 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아쉽다. 그런 점을 설득할 내 역량을 키워야겠다.
- 제주도내 건축주들의 요구는 다른 지역과 다른가.
애월에 있다 보니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분들의 절반은 육지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면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