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자연과 도시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7> 소헌건축 양현준
지리적 고립으로 생긴, 다른 지역과 다른 문화라서 ‘보물’돼
외부공간이 차량 중심인데다 ‘사람 공간’이 없어서 삭막해져
- 건축가 양현준은 태어나 자란 곳은 촌이다. 제주 시내였으나 시내 중심과는 한참 멀었다. 쌀밥이 아닌 조밥을 먹고, 어릴 때는 촐(가축의 먹이가 되는 풀로 표준어로는 ‘꼴’임)을 날랐다. 그런 마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서귀포로 향하는 6차선이 만들어졌다. 사무실은 기억에 가득한 마을에 두고 있고, 여름이 오기 전 사무실에 퍼지는 감귤꽃 향기에 취한다. 감귤밭에 사무실이 있어서다. 사무실 ‘소헌(素軒)’은 본질을 말한다. 건축가로서 건축의 본질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 쉽지만은 않다. 그러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건축을 바라보려면 사물의 본질에 충실하고, 아울러 삶의 본질도 그래야 한다. 그는 그런 기본 위에 건축을 얹으려 한다. 그에게 건축은 삶과 닮았다. 어릴 때 그가 본 아버지는 직접 창고를 짓는 분이었고, 아버지를 거들며 건축의 본질을 배워갔다. 몸에 밴 경험은 그를 자연스레 건축가의 길로 인도했다. 김한진건축사사무소를 다닐 때도 그랬고, 이로재에서 건축가 승효상을 만날 때도 그랬다. |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주에 맞는 건축은 어떤 것일까.
제주에 어울리는 건축? 제주에 맞는 건축? 추상적이다. 제주에 맞는, 어울리는 건축을 생각해보면 거기엔 돌담도 있고, 올레도 있다. 모두 자연이 만들어낸 건축이다. 이렇게 보면 가장 제 주다운 건축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밀접하게 접촉하면서도 자연에 묻힌 건축이 제주다운 건축이 아닐까 생각한다.
- 제주라는 땅을 두고 사람들은 ‘보물’이라는 가치를 입힌다. 어떤 경우엔 그런 말들이 선언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제주라는 땅은 어떤 의미가 있고, 왜 중요할까.
제주의 가장 큰 특징은 섬이라는 점이다. 섬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어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고 가장 늦게 변한다. 제주에 신당 등의 무속신앙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달리 의지할 데도 없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니 그런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자연환경에 맞섰고, 초가라든지 올렛길, 돌담 등이 모두 그런 이유로 생겨났다. 아마 지리적 고립으로 생긴, 다른 지역과 다른 문화여서 사람들은 제주를 보물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그런 독특한 문화를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데 관광이라든가, 교통수단 발달, 자동차 급증 등으로 훼손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외자유치 등에 급급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제주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이들과 활동가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제는 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이 말로만 제주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 서울은 ‘도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더라. 사람 중심 도로를 만들곤 한다. 제주도는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할 것 아닌가.
빌라가 들어서고 차가 많아지다 보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건물이 세워지고 자연이 훼손될 것 같으면 빌라 단지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자. 차는 지하로 넣고, 지상에는 인간 중심의 녹지공간 조성을 조성해보자. 걷다 보면 모두 아스팔트와 시멘트이고 차량이 주차돼 있다. 그러다 보니 삭막하게 보인다. 외부공간이 차량 중심인데다 사람들의 공간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 제주도에는 가로수도 많지 않고, 도로를 계속 확장하다 보니 있는 가로수마저 없앤다. 그런 건 도정이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 개인 한 사람의 의지로 될 건 아니다. 제주여고 입구에 있던 조밤나무도 그런 사례이다. 수십 년 된 조밤나무가 잘려 나갈 때 중앙차로를 만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큰 나무를 키우려면 몇십 년이 걸리는데….
- 건축가는 무척 중요한 직업군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할 역할도 무척 많다.
건축가들은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도시를 설계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종합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건축가는 자연도 생각하고 도시도 생각하고 그런 정책에 맞서서 싸우기도 하고, 조언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 건축과 인연을 맺으면서 인상 깊은 책 이야기를 해준다면.
에인 랜드의 소설 <파운틴헤드>이다. 건축을 한 지 10년 차에 읽은 책이다. <파운틴헤드>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의지가 약 해졌을 때 만난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건축가의 길이 여기에 있구나, 느꼈다. 건축에 대한 의지를 재정립해준 책이다. 사무실 이름이 ‘소헌(素軒)’이다. 자신만의 양식과 건축의 본질. 사물의 본질이나 삶의 본질 등, 기본이 바탕이 되어야 모든 게 된다는 것이다. 복잡할 필요도 화려할 필요도 없다. 근원에서 시작하기, 그렇게 소헌이 되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는 근대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그가 설계했다. 놀랄만한 작품은 더 많다. 우리와 억지로 엮는다면 20세기 초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온돌방식에 매료된 점도 하나가 아닐까.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정직한 오만과 위선적인 겸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전자를 선택했고, 그것을 바꿔야 할 이유를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정직한 오만’. 라이트의 특성을 보여준다. 소설 <파운틴헤드>는 라이트를 모델로 삼아서 썼다고 한다. <파운틴헤드>는 라이트 생전에 출판됐고, 라이트는 에인 랜드가 자신을 모델로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