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공존과 조화로움이 훌륭한 제주 풍경 돼”

제주한라병원 2022. 6. 30. 13:37

[나는 제주건축가다] <6> 티에스에이건축 김태성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재현이 지역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

건축은 관계를 구축하는 행위이며 공적인 환경으로 존재해

 

건축가 김태성…
 
성장기를 보낸 곳은 신제주에 있는 제원아파트였다. 신제주 개발과 맞물리며, 그 기억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다. 그 기억은 지금처럼 막혀 있는 아파트가 아닌, 사방으로 뻥 뚫린 ‘동네놀이터’로서의 아파트였다.
어릴 때부터 건축을 만났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건축가 김석윤 소장의 사무실을 자주 오갔고, 그 냄새 또한 기억한다.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거치면서 건축가 이종호를 만났다. FM2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건축가 이종호는 “표피만 건드는 게 건축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이 이종호였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모습은 어쩌면 건축가 이종호에게서 배웠는지 모른다.
면허를 일찍 따고, 40대에 고향에 복귀해서는 다시 건축을 배우는 심정으로 제주를 알아가고 있다. 사무실은 그의 집 ‘아소재(雅笑齋)’ 1층에 있다. 집 이름에서 보듯, 바르고 건강한 건축이 무엇인지 탐구하려 하고, 행복한 웃음이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그의 얼굴이 그려진다.

 

- 제주에서 의미 있는 장소 또는 공간은 어디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일명 ‘선인장 마을’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월령리 선인장은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으로부터 밀려와 월령리에 자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해안가뿐만 아니라 마을 안에도 넓게 분포한다. 이는 낯선 선인장이 월령리 마을 사람들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결국 이 마을의 정체성을 이루게 되었다.

선인장이 제주의 돌담과 만나서 마을의 풍경을 이룬다. 선인장은 제주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며, 해류를 따라 씨앗이 넘어와 제주의 토착 돌과 만나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제주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풍경의 과정이 현재 제주의 상황과 묘하게 교차되며 ‘제주의 풍경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원래 제주의 것만 소중하다면 선인장은 다 치워버리고 제주 돌담만 남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공존하면서 서로의 조화로움이 더 훌륭한 제주의 풍경이 되었다.

 

-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 같다. 제주의 지역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면.

제주도는 섬이다. 섬은 개방과 확장성이 없으면 도태된다. 바다 저 멀리 어디서 날라온 지 모르는 선인장 씨앗이 월령리에 들어왔다. 제주엔 돌담이 있고, 선인장 씨앗이 제주 돌담 사이로 올라와 지역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결국 이 풍경은 제주의 것과 외부에서 들어온 것의 공존(共存)이라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축이 지역성을 가진 건축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과거의 것에만 집착하는 것, 또는 재현하는 것이 제주의 지역성을 추구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제주의 풍경’이라는 과거의 그 풍경도 사실 변하는 과정 속의 풍경이다. 현재의 제주 풍경도 미래에는 제주의 지역성이 된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제주라는 곳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공존을 포함해 올바른 방향성을 찾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건축이 제주의 지역성을 고민하는 건축인의 자세이다.

 

- 제주에 어울리는 건축은 뭘까?

2018년 일본 규슈 지역에 답사를 간 적이 있다. 제주와 유사한 건축을 기대했는데, 너무나 다른 건축양식을 보았다. 차이점은 간단하다. 환경에 적응했던 삶의 흔적이 차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람과 싸워야 했던 제주도의 민가는 땅보다 낮게 집터를 잡았고, 빗물 처리가 가장 힘들었던 가고시마의 민가는 물길을 만들며 돋운 땅에 집터를 잡았다.

과거의 건축이 자연환경에 의해, 지역문화에 의해 동일한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현대의 도시는 각각의 다양함이 모여 풍경을 만든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원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현대 건축에서 과거의 자연환경처럼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전통 마을과 현대의 도시 풍경의 차이점은 ‘다양성’이라는 단어로 구별된다. 다양성의 원인은 다양한 삶의 방식에 따른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과거 건축의 가장 큰 고민이 자연환경이라면, 현대 건축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람 그 자체이다.

제주 건축은 제주 역사(시간)의 흔적, 자연환경의 특성을 존중하고, 현재 제주인들의 사고방식, 삶의 방식을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그 시대 건축문화로 정리될 것이다.

 

- 제주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면.

제주의 풍경을 만드는 이는 누구인가?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등 거장의 건축물도 구석구석 차지하겠지만, 결국 다수의 건축은 지역 건축가에 의해 계획되고 이들의 건축 수준이 그 지역 도시 풍경의 수준으로 연결된다고 보면 제주 건축가의 역할이 보인다. 제주의 건축이 양적인 성장의 시기는 지났다고 모두들 느낀다. 지금은 제주 건축의 질적인 성장을 더욱 고민해야 할 때이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이제 제주의 자연과 사람의 공존, 제주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공존, 이러한 공존의 건축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들이 각각 건축 작품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품들이 함께 어우러져 제주 건축의 기본풍경을 만들어간다.

 

- 건축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첫 번째는 ‘건축이란 관계(Relationship)를 구축하는 행위’이다. 기본적으로는 대지의 기후와 지리 등의 자연적 조건과 주변의 건물, 도로, 풍경, 녹지 등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넓게 본다면 인문·사회적 환경 속에서, 그 장소 속에서 적절하게 알맞은 옷을 입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균형(valance)감을 잊지 말자’이다. 예를 들어 건축주의 상업적 욕심을 채워주는 것과 건물 이용자의 사용성 사이에서의 균형감을 지키는 것, 또는 건축가의 디자인 욕심과 주변 풍경과의 조화로움 사이에서의 균형감을 지키는 것 등을 말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건축은 구축되면서 공공성을 가진다’라는 점이다. 건축은 구조물로서 완성되면 자연과 도시와 함께하는 공적인 환경으로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