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물에 사용설명서라도 달아줬으면”
숨은 제주, 알고 싶은 제주 139
나는 제주건축가다 <3> 에스오디에이건축 백승헌
전통 건축은 높지도 않고 마당 자체로도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신촌미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끝없이 연결되는 소통 구조
건축가 백승헌은 ..... 사람들은 늘 보던 걸 뒤늦게 알곤 한다. 그렇듯, 그도 자신이 살던 조천읍 신촌리의 느낌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가까이 있는 건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순간 알게 된 ‘신촌미로’. 그건 우리 것이다. 어느 순간 그의 가슴에 ‘제주성(濟州性)’이 “팍!”하며 박혔다. 제주사람이, 신촌사람이었음을 느낀 순간이다. ‘제주성’의 자각은 혼자만이 아닌, 제주라는 ‘공동체’의 자각이기도 하다. 고향을 가슴 깊이 담아내고 사랑하는 그는, 사무소 이름에서도 사람의 강한 향을 풍긴다. ‘에스오디에이’를 영문으로 표기하면 ‘Social Oriented Design & Architecture’이다. 사회를 중심에 두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지향한다는 뜻이 이름에 담겼다. 그래서일까. 김광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건축의 ‘공동성’을 그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최근엔 ‘SODA’ 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바뀐 로고는 건축을 통해 마음껏 놀아보자는 생각이 가득하다. |
- 제주의 풍토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 있다면? 아니면 제주에서 끌리는 공간은 어디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때 놀던 골목 중 올레길이 많았다. 가우건축의 양 건 소장이 어느 날 “신촌미로라는 얘기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신촌 출신인데 ‘신촌미로’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운동을 겸해서 신촌을 돌아보는데 ‘신촌미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면 저기로 나오고, 우리 집 근처에 그런 곳이 있었다.
미로 얘기는 전통 얘기와 같다. 옛날에는 길이 다 미로였다. 미로가 끝나는 곳은 막다른 길인 ‘막은창’이다. 중간은 소통이 다 되는 구조인데, 그런 게 얼마 남지 않았다. 신촌은 아직도 그런 길이 많다.
- 건축가들은 수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 중 일부를 도면에 옮길 텐데, 설계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는가.
내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릴 때 경험이다. 조천읍 신촌의 우리 집과 할머니 집,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초가지붕에 올라가서 작업하는 것도 봤다. 구좌읍 평대의 외할머니 집도 초가였다.
제주도의 집은 재밌다. 집은 도로보다 낮았고, 마당도 평평한 곳은 없다. 동산이 있고, 어릴 때는 무척 재밌는 공간이었다. 동산에 오르면 초가지붕이 다 보였다. 그래서인지 입체공간을 좋아한다. 웬만하면 단차를 살려서 집을 지으려고 한다.(2019년 제주 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인 ‘송당리 오름 품은 집’도 집 내부에 단차를 살려서 만든 집이다.)
- 건축가의 사명이 있다면, 덧붙여서 지역 건축가의 역할이라면.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라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어떤 분들은 건축학도를 위해 출강을 다니고, 또 어떤 분들은 동네의 조그마한 민원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민들과 많이 소통하면 좋다. 교수와의 연구용역도 거절하지 못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교수의 부탁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용역을 통해 내 고향 제주가 더 좋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청소년 건축 학교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하고 있다.
- 제주에 맞는 건축, 제주에 어울리는 건축은 뭘까.
딜레마다. 건축주들은 바다와 오름을 보고 싶어 하고, 2층임에도 3층 같은 집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딜레마가 생긴다. 모던으로 가려면 뭔가 고개를 내민다. 자기를 뽐내기 위해서라도 고개를 내미는데, 뭔가를 보기 위해서도 고개를 내민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높을 필요가 없다. 마당 자체로도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굳이 너머에 있는 오름이나 한라산, 바다를 보려 하지 않아도 됐다. 어떻게 보면 가치의 차이일 수도 있다.
환경에 대응하는 건축까지는 고민하지 않았지만, 1층 바닥이 전부 잔디이며, 벽하고 지붕만 씌운 곳에 사람이 산다면 어떨까. (송당리 오름을 품은 집 건축물을 말하면서) 생화를 실내에 끌어들였고, 밖과 연결되는 구조로 만들었다. 집주인은 개미나 벌레가 들어오면 어떡하느냐고 고민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건축주에게 최근 들은 말이 있다. “‘내가 실내에서 검질을 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더라. 너무 기분이 좋았다.
- 건축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 오픈하우스이다. 건축물이 준공되면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서 소개를 하는데, 서울은 많이 한다. 현상설계로 진행된 공공건축물은 시민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인에게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준공이 되면 시민들, 즉 집주인을 초대해서 건축 사용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시민은 시민의 권리를 찾는 것이고, 건축가와 시민과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스마트폰을 사더라도 사용설명서가 따라오는데, 몇십억 건물을 지으면서 건축 사용설명을 집주인들에게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 못해 집주인을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건축사용설명서’를 만들어서 해당 건축물이 어떤 의도로 기획되고 사용해야 하는지 설명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