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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저터널 구상’ 진척될까, 폐기될까

제주한라병원 2022. 3. 11. 13:40

대선 때마다 정치권의 공약 단골메뉴로 등장, 소모적 논쟁만 부추겨

환경 문제 및 경제적 타당성 등 사전 조사와 공론화 절차 우선돼야

 

오래전 유럽 여행길에 유로터널을 이용한 적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이 해저터널의 공식명칭은 채널 터널(Channel Tunnel)이다.

영국 해협의 가장 좁은 부분인 도버 해협의 지하 터널 구간 50.4km를 영국의 포크스턴과 프랑스의 칼레를 3개의 터널이 연결하고 있다. 초특급열차 유로스타가 이 터널을 통해 런던과 파리를 최단 2시간 15분에 잇는다.

이 유로스타가 유명한 것은 영국과 유럽대륙을 해저터널로 연결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터널 공사는 1993년에 완공되고 1994년 5월에 공식적인 운영이 개시됐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제주 해저터널’ 건설 논란이 또 다시 제주지역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에서 제주까지 KTX 고속철도를 놓는 해저터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이 발단이다.

이에 즉각 전남에선 기다렸다는 듯 대선공약 반영을 공식 요청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제주도내에서는 제2공항과 맞물려 반발기류가 이어지자 일단 공약에서는 제외했다. 하지만 이 구상안은 완전 폐기된 것이 아니고 잠시 물밑으로 가라앉은 양상이어서 언제든 수면위로 부상할 수 있는 사안이다.

사실 제주 해저터널 구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02년 관련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제주시∼추자도∼보길도 73㎞ 구간에 해저터널을, 보길도∼노화도∼완도 36㎞ 구간에는 해상 교량을 각각 건설해 총연장 109㎞를 연결한다는 복안이었다. 사업 비용은 약 14조 6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완공될 경우 서울~제주간 KTX로 2시간 26분 정도 걸려 항공 노선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이 터널 관통이 성사되면 세계 최장 터널이 된다.

현존하는 해저 터널 중 유로터널은 순수 해저 구간이 30㎞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의 세이칸 터널(54㎞)도 해저 구간은 23㎞ 가량이다,

2007년에는 제주도와 전라남도가 구체적인 해저터널 청사진을 내놓고 중앙정부에 공식 건의하기에 이른다. 이 구상안이 발표되자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대두됐다. 제주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져 보다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방문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체류객 감소와 '섬' 정체성 상실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제주에서는 신공항 건설 필요성이 더 강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어서 해저터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2008년에 들어서면서 4대강 사업 등에 주력하며 해저터널 실현 가능성은 더욱 멀어져갔다.

그러던 중 정치권이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려 놓는다. 2009년 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야 정치인들이 타당성 연구 용역비 10억원을 예산에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7월 정부의 예비타당성 용역 결과, 편익비용(B/C)이 0.78(1.0 이하면 경제성이 낫다는 뜻)로 나와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제주 해저 터널 구상은 이후 정치권의 공약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제18대 대선을 1개월 앞둔 지난 2012년 11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해저터널 건설 적극 검토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대 여론이 일자 이를 철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 2017년에도 등장했다. 전남에서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추진의 대선공약화를 요구한 것.

이번 제20대 대선에도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다시 점화됐다. 이에 전남에서는 즉각 대선공약 반영을 공식 요청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폈다. 전남의 언론들도 이를 강하게 주장하며 거들고 나섰다.

한국교통연구원 또한 ‘서울~제주간 고속철도 건설추진에 대한 주요쟁점’ 재검토 보고서에서 현재의 실제 관광객 수를 감안, 타당성 조사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종전 입장을 번복했다. 특히 종종 제주를 강타하는 폭설과 한파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이 묶이는 자연재해는 해저터널 주장 측 논리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제주 해저터널 프로젝트가 실현될 경우 단점뿐 아니라 장점도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전남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된다면 경제·관광 분야에서 막대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제주도민 사회에서는 해저터널이 연결되면 제주는 내륙화해 환경 파괴와 체류형 관광객 감소에다 섬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려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때문에 이 사안은 해저터널 당사자인 제주도민들과 전남도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공론화 절차를 거치고, 환경 문제와 경제적 타당성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는 절차를 우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제2공항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과 논쟁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정치권의 단골 공약 메뉴인 ‘제주 해저터널’ 이 이번 대선 후 어떠한 형태로 진척될 지, 아니면 폐기처분 될 지 주목된다.

 

 

<언론인 윤정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