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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제주한라병원 2021. 10. 26. 15:11

30년 동안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지나다보니 내가 벌써 근속 30년을 맞게 되었다. 나도 나 자신이 이렇게 한 직장을 오래 다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미래의 시간을 보면 까마득해 보일 수도 있는데, 과거의 시간을 생각하면 긴 시간인 것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 시간인 것 같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 시간의 양과 질만큼 여러 가지 경험들을 많이 한 시간들이었다. 첫 직장인 지금의 병원에 입사를 하게 되면서 나의 직장 생활을 시작되었다.

신규 간호사 시절을 떠올리면 업무도 고되게 느껴지고 하루하루가 당황스러움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여유도 없었고 공부할 엄두는 생각하지 못 한 채 퇴근하면 쓰러지기 일쑤였다. 같이 일하는 선배들은 너무도 위대해 보였고 나도 언제쯤 저렇게 성장 할 수 있으려나 막연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가끔씩 병원에서 만나는 동기들을 보면 괜히 나 같아 보였고 그들도 나 같이 많이 힘들 거라는 동질감을 느꼈다. 어쩌다 쉬는 날이 같아서 만나는 날이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지…. 그 때는 그것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끈끈한 동기애가 있었다.

점차 년차가 올라 갈수록 나에게는 책임이 주어졌고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도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직업이다. 모르면 누구나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연차가 늘어갈수록 배우지 않고 그저 묻혀서 지내는 내 모습을 간혹 보곤 한다. 20~30대의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편안하게 안주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마음을 다 잡아본다.

내 젋음의 반 이상을 이곳에서 지냈다. 간호사로 생활하면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칼날 같은 모진 말들도 들어 봤고 고맙다고 따뜻한 말을 들었던 때도 있었다. 이 모두가 나를 성장하고 이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든 귀중한 소리임을 깨닫는다. 내 가치관, 나의 소신대로, 나의 도움으로 누군가의 삶이 변화되는 일, 그런 삶을 사는 가치있는 인생을 뚜벅뚜벅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30년 동안 무탈하게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박지영 61병동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