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깨달으리라…”
다시 읽는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
대학시절에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를 읽었다. 40여 년 전 일이지만 그 때의 감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 편지에는 어쩔 수 없이 땅을 팔아야하는 인디언들의 피 끓는 아픔과 자연 사랑의 끝없는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당시 제주사회는 이른바 ‘대지사건’이라 불리는 권력층의 땅 투기 사건으로 온 도민이 격앙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1854년, 미국의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지금의 워싱턴 주에 터를 잡고 살던 인디언 수와미족의 추장인 시애틀에게 편지를 보내 땅을 팔아주도록 종용한다.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는 대통령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가 있는가, 부드러운 공기나 재잘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나? 이 땅의 구석구석이 우리들에겐 신성하다. 우리는 땅의 일부이며, 땅은 우리의 일부분이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해변의 모래톱, 어두침침한 숲속의 안개와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우리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 성스러운 것이다. 나무속에 흐르는 수액들은 우리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들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때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토지를 양도가 가능한 사유재산으로 보는 백인들의 인식과 다름을 강조한 것이다. 토지를 집단적 공유재로 생각했던 인디언들에게 토지의 양도는 곧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으로 느꼈던 것이다. 추장의 편지에는 부족 전통에 대한 애착과 자연을 향한 애정이 넘친다.
“반짝이며 흐르는 개울과 강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피와도 같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는 우리 조상의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 형제이며 우리 목을 축여 준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 자매이고, 사슴과 말과 큰 독수리는 우리 형제이다.”
시애틀추장은 그들이 땅의 양도를 거부하더라도 백인들은 무력으로 강점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이 땅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기억해 줄 것을 당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지상에서 마지막 인디언들이 사라지고 오직 광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만 남더라도 이 해변과 숲은 우리들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갓난아기가 엄마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당신들에게 땅을 팔더라도 당신들은 이 땅이 성스럽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에게도 이 땅이 성스럽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인디언들의 땅은 미국 정부에 넘겨졌다. 그러나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정신만은 꺾을 수가 없었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는 현대 생태주의 연설문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힌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당시 미국 대통령 피어스는 이 편지에 감동해 그 땅에 세운 도시의 이름을 시애틀로 정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이 편지가 시애틀 추장이 쓴 것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어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애틀 추장의 편지에 담긴 자연에 대한 사랑과 철학이다.
160여 년 전의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마치 오늘 누구에겐가 전해 받은 편지 같은 느낌이다. 땅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 제주사회에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학시절에 이 편지를 읽을 때는 땅 투기에 대한 걱정이었다면 지금은 환경보존이라는 명제가 너무도 또렷하다. 땅을 사놓고 경관을 사유화하겠다거나 그 곳을 흐르는 개울이나 공기도 소유하겠다는 개발업자들을 수없이 보아 온 탓이기도 하다. 숲을 베어내고 그 곳에서 살던 곤충이나 벌레, 온갖 풀과 짐승들을 여지없이 쫓아내는 갖가지 사업들이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오늘도 제주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비자림로 확장이나 제2 공항건설을 놓고도 찬반의 목소리가 드높다. 제주 땅에 눈독들인 육지 사람들의 투기행위도 여전하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를 제주사람들과 함께 다시 읽고 싶은 이유이다.
인디언들의 삶터를 빼앗아 만들어진 미국 북서부의 최대도시인 시애틀(seattle)은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항공사, 아마존,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켰다. 이 기업들은 미국경제의 중추가 됐고 미국사람들의 부를 창출시킨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부의 가치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가운데 삭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명징한 문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나가고,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언론인 김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