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지나 온 날들이 좀 더 성숙하게 해
병원생활 30년 회고
1990년 4월 5일 한라병원에 첫 출근을 하고, 수술실로 부서배치를 받았다. 현재 진단검사의학과 자리에 위치했던 수술실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제주도의 중증환자 수술은 거의 도맡아 했다.
야간이나 휴일 당직을 서다가 응급수술이 발생하면 ‘삐삐’를 쳐서 당직자를 ‘콜’하고, 그렇게 수술실에서 푸른 벽과 마주하며 6년을 보내는 동안 가슴 벅찬 감동의 순간도 많았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적막을 가르는 깊은 밤. 흰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씨 속에 교통사고로 내원한 응급환자의 수술이 진행됐다. 신경외과, 마취과, 일반외과, 그리고 동료 간호사들이 한밤중 눈 날씨 속에도 달려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집중하는 가운데 나도 한 일원이라는 것에 가슴 뭉클했다.
수술실을 거쳐 응급중환자실, 응급실 등을 거치는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은 언급하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작다. 하지만 경쟁적이리만큼 간호에 열정적이던 그 때 간호사들은 최신지견을 얻기 위해 학회도 참 열심히 찾아다녔다. 새로운 의료 장비들이 도입되면 사용법을 숙지하고, 임상에 적용할 때 부담감이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간호사들은 모두 잘 해냈다.
제주에서 사상 최초로 첫 개심 심장수술을 앞두고 수십 차례 시뮬레이션을 하고, 외래 바닥에 쪼그려 앉아 에크모(ECMO) 장비 작동법을 배웠었다. 온갖 노력 끝에 첫 개심 심장수술은 성공적으로 행해졌고, 환자가 감사 인사를 전하며, 걸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응급, 중환자 간호팀을 맡게 된 지난 10년간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재지정, 권역외상센터 유치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평가 관리 및 법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재난, 전문화 교육, 지원 사업 등 숨을 못 쉴 정도로 일에 치였다. 모든 게 새로운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더 힘들었다. 해마다 평가 수검을 받아야하고, 각종 지침을 제정하는 일을 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지만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어 그나마 소임을 해냈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근무하는 동안 나는 쉽게 가기 위해 원칙을 무시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소 힘들더라도 원칙을 준수하고, 바른 것을 선택하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는 속상함도 많았고, 핏대를 올리며 지켜 내려했던 일도 많았다. ‘매일 맑으면 사막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 치열하게 지나 온 날들이 지금의 나를 좀 더 성숙하게 하고 다시 팔딱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