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언론인칼럼

지역의료기관에 대한 믿음, 우리의 건강을 지킨다

제주한라병원 2021. 2. 18. 14:51

새해가 되면 누구나 꿈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산다. 온갖 SNS를 통해 쏟아지는 친구들의 새해맞이 문자에는 건강과 행복이란 단어가 수북하다. 유달리 건강을 강조하는 문구가 많았다. 코로나19가 휩쓸었던 지난해가 무척이나 힘겨웠던 탓이기도 하다. 실건실제(失健失諸)라는 말이 있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를 거치면서 건강이야말로 최고의 꿈이며 핵심단어가 됐다.

 

건강은 육체는 물론 정신, 또는 사회적으로 안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명시돼 있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관심은 건강에 쏠렸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이나 중세기를 지배하였던 스콜라철학과 분리해서 건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양에서도 건강은 유교와 도교, 불교 및 무속을 위시한 민속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바로 건강이 경험의학적인 성격뿐 아니라 주술의학적인 성격도 가지며, 때로는 당대의 자연철학을 배경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음식을 고루 섭취하고 약을 적절하게 복용하는 일, 그리고 운동과 호흡조절을 통한 심신의 단련, 물을 이용한 치료법 등이 주로 활용돼왔다.

반면에 건강을 잃었다는 것은 질병을 가졌거나 몸과 정신이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은 지역의료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하다. 누구나 필요할 때 그 지역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공급체계,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보건의료자원을 육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헌법 36조가 정한 국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헌법은 국민의 보건에 관해 국가가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제주도민 500여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치명률 0%이다. 전국의 치명률 1.7%에 비교할 때 제주지역 의료기관의 치료성과는 대단하다. 제주도내 의료진의 실력과 재능을 보여준 계기라 할 수 있다. 청정지역이라며 방역에 자신감을 보이다가 연말에 들이닥친 확진 확산에 허둥대던 방역당국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코로나19의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제주지역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변화이다. 지난해에는 제주도내 병원에서 뇌사자 공여의 간이식 수술이나 미세 녹내장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등의 뉴스가 잇따랐다.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라든가 난임 시술 의료기관 평가, 폐암과 대장암 진료 적정성 평가, 정신과 등의 전공별 의료급여 적정성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병원들도 줄을 이었다. 그만큼 제주도내 병원의 의료시설과 기술이 진보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제주도민들이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는 별로 두터워 보이지 않는다.

보건관계자들은 지난해 서울 등 다른 지방 의료기관에서 입원치료를 받았거나 외래진료를 받은 제주도민이 연인원으로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지출한 진료비도 천500억 원은 족히 넘었다고 짐작한다. 서울에 가야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제주는 의료서비스나 환경이 열악하다고 지레 짐작하고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면 서울행 항공편에 오른다는 것이다. 제주속담에 ‘동네 심방(무당) 알아주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실력이나 재능은 있지만 동네(지역) 사람이어서 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지역의료기관의 의사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의사들이 제주에 얼마든지 많지만 서울의 의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친구가 있다. 삼십년 넘게 공직에 몸담았던 그는 퇴직한 후 고향 근처 마을에 자그마한 농지를 구입하고 한라봉 농사를 짓기 위해 하우스 시설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때가 2천12년 4월이었다. 여린 봄바람이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흔들거렸고 들판은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온갖 봄꽃이 앞 다퉈 피어나면서 내뿜는 향기로 콧등이 시렸다. 순간이었다. 친구는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의식을 잃고 비닐하우스 지붕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혼자서 작업을 하다 당한 일이어서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이웃 사람의 눈에 띠어 제주시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환자실에서 무의식 상태로 28일을 보냈다. 집안에서는 장례준비를 할 만큼 위급했다. 그러던 그가 눈을 떴다. 주변사람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던 그가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그 후로 병원의 재활치료를 거쳐 지금은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다. 얼마 전에 만난 그에게 치료해 준 의사가 누구였냐고 물었다. “이상평 박사, 대단한 분이셔, 최고!”라며 엄지 척을 해댔다.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인터넷으로 그 의사를 찾아봤더니 신경외과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라 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이제 제주도민들도 지역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를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이와 함께 정부나 도정에서도 지역의 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한 예산과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내 병의원에는 이상평 박사 같은 훌륭한 의사들이 얼마든지 많다고 믿는다. 또, 새해에는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제주도민 모두의 건강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