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합일의 상징인 포탈라궁을 만나다
정교합일의 상징인 포탈라궁을 만나다
티베트 라싸
정교합일, 즉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연결돼 종교의 지도자가 정치적 실권자로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정치구조를 가진 티베트. 고대에 제사를 올렸던 제사장이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것처럼, 21세기의 티베트는 종교의 수장인 14대 달라이라마가 난파된 배를 이끄는 선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티베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없다. 유목민들이 고원지대에서 흩어져 살다가 629년, 티베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송첸감포에 의해 ‘토번(吐藩) 왕국’이 개창되었다. 그는 모든 유목민을 통합한 뒤, 정치적 안정과 불교의 대중화를 통해 티베트의 역사를 시작했다. 국호인 티베트는 몽골어 ‘투베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눈 위의 땅 너머로’라는 뜻이며, 만년설로 둘러싸인 땅을 의미한다. 그 후 티베트는 669년 당나라와 ‘대비천 전투’를 통해 타림 분지와 인접한 신장, 카슈가르, 둔황 등 실크로드 지역을 차지했고, 763년 안녹산의 난 때에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을 잠시 점령할 만큼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유목의 나라, 토번 왕국은 9세기 말, 랑다르마 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였다.
토번 왕국의 시조인 송첸감포는 네팔 출신의 브리쿠티 공주와 결혼하면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가져와 티베트의 문자를 만들었고, 당나라 출신의 문성 공주를 아내로 받아들이면서 당나라로부터 불교, 주조, 제지 기술 등 다양한 문화를 가져왔다. 이때 문성 공주가 가져온 불상을 토대로 불교사원(라모체와 투르낭)이 지어지면서 티베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가 전파되었다.
사실 티베트 역사 문헌에는 불교가 당나라로부터 전해졌다고 나와 있지만, 그 이전부터 티베트에는 인도의 고승들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로 강을 메우고 있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간 뒤 당나라를 통해 다시 티베트로 전해졌고, 많은 인도 승려들에 의해 초기 티베트 불교가 성장했기 때문에 친당나라와 친인도와 같은 사대주의가 국수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결국, 티베트의 지도층은 중국 세력과 인도 세력으로 나뉘었다. 이렇게 나눠진 파벌은 훗날 여러 개의 티베트 종파로 분리되어 서로 이념적․학문적으로 발전을 도모하며 새로운 국면을 마련하는 계기도 되었다.
다양한 종파의 생성은 갈등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선의의 경쟁을 함으로써 티베트 불교를 한층 더 발전시켰고 그들만의 독특한 불교를 개척하게 되었다. 이런 불교가 티베트 정치에 개입되어 강력한 새로운 통치이념의 바탕을 이루면서 ‘정교합일’이라는 티베트만의 정치적 제도가 만들어졌다. 막강한 불교 세력은 토번 왕국을 몰락시켰지만, ‘달라이라마’ 환상 제도를 통해 오늘날 티베트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정교합일의 중심은 단순히 정신적인 무형의 학습이나 종교의 전통 윤리로서만 후손들에게 계승·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의 수장 가운데 가장 위대한 달라이라마로 평가받는 5대 달라이라마는 정교합일의 상징물인 포탈라궁을 지음으로써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묶는 데 성공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탈라궁은 지어질 당시 5대 달라이라마가 입적했지만, 공사가 지연되고 사회적 동요가 생길 것을 걱정해 죽음을 알리지 않고 계속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거대한 바위산처럼 철옹성을 자랑하는 포탈라궁은 달라이라마의 겨울 궁전으로 불리지만, 토착 종교인 본교를 누르고 강력한 티베트 불교를 정치적․종교적 상징으로 발전·승화시켜 티베트 사람들로부터 항상 숭배되는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상징물로 태어났다. 포탈라궁을 비롯해 수많은 사원이 지어지고 부처님의 말씀이 국민에게 퍼지면서 달라이라마의 환생은 제도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잠시 티베트 불교와 역사를 뒤로하고 티베트의 중심 도시로 나가면 라싸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거대한 포탈라궁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포탈라궁을 사원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분명히 왕궁이다. 물론 포탈라궁은 역대 여러 명의 달라이라마가 거주했던 곳이고 그들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당을 비롯해 승려들을 교육하는 학교, 도서관 등도 있다. 14대 달라이라마도 인도 다람살라로 정치적 망명을 가기 전까지 이곳을 사용했다.
포탈라는 티베트어로 ‘깨끗한 땅’이라는 뜻이다. 높이 117m, 가로 400m에 13층 규모여서 그 크기가 엄청나다. 포탈라는 외벽을 붉은색과 흰색으로 칠했는데 바로 이것이 종교와 정치가 하나임을 상징한다. 티베트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반 거주지는 흰색을 칠하고 신성한 신의 영역은 붉은색을 칠한다. 붉은색의 ‘홍궁紅宮’은 종교행사를 주재하는 곳이고, 흰색의 ‘백궁白宮’은 정치를 돌보는 곳이다.
포탈라궁은 7세기경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송첸감포 왕이 당나라의 문성 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를 맞이하면서 건립한 것이 초석이 되었다. 그 후 몽골제국의 정복으로 사실상 파괴되었다가 17세기 5대 달라이라마 때에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5대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에서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송첸감포 시대의 영토를 회복한 인물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탈라궁이 중국의 침략으로 사라질 뻔하기도 했다. 중국 침략 이후 문화혁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 홍위병들은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포탈라를 파괴하려 했다. 이때 저우언라이가 군대를 배치하며 홍위병의 침탈을 막아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포탈라는 부처님을 대신해 미천한 중생들을 살피고,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꿈꾸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자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외형을 갖춘 포탈라는 조캉 사원 옥상에서 바라보는 것이 제일 좋다. 금빛의 동상들 사이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포탈라궁.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물론 나라를 잃어 포탈라궁 앞은 붉은 오성기가 휘날리고 연못은 광장으로 변해 점점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티베트 사람들은 포탈라궁 주위를 돌며 옴마니밧메훔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