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요르단의 보석
중동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요르단의 보석
요르단 제라시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 2015년 화성을 주제로 한 영화 '마션', 2019년 월트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 등 수많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요르단. 우리에게는 중동 어느 한쪽에 있는 국가로 생각하지만, 성서에서도 이스라엘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서의 땅이 바로 요르단이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몇 안 되는 중동 국가 중 하나이다.
국토의 80%가 사막인 요르단은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관광산업이 GDP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광 대국이다. 구약성경에 모세가 출애굽 때 이집트를 탈출해 운명한 느보산, 야곱의 형 에서가 세운 에돔 왕국,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 장군이 전사한 암몬 전투의 현장 암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매년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페트라, 붉은 사막이 아름다운 와디럼, 치유와 힐링의 휴양지 사해, 중동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제라시 등 요르단은 중동 여행의 50%를 차지할 만큼 세계문화유산이 차고도 넘친다.
이 중에서도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48km, 1시간 남짓 달려가면 고대 로마제국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라시에 이른다. ‘1000여 개의 기둥 도시’라는 별명답게 제라시는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 대왕 혹은 그의 부하 페르디카스 장군이 도시를 세웠다. 그리스·로마 시절에는 암만(그 당시 필라델피아)과 함께 연합도시인 ‘데카폴리스(10개의 도시라는 뜻)’에 속했다. 그 이후 이슬람 최초의 통일 왕조인 우마이야와 오스만 제국이 차례대로 제라시를 다스리면서 그리스·로마 문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 문화까지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동서양의 문화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실크로드를 통해 값비싼 보석과 비단 그리고 상아 등을 거래하던 카라반과 문화 사절단들은, 각각의 종교와 문화를 제라시에 전해주고 새로운 것을 가지고 떠났다.
제라시의 전성기는 AD 1~2세기이며, AD 6세기경에는 비잔틴 교회가 20개나 있을 정도로 번영했지만, 로마제국의 몰락, 749년 갈릴리 대지진과 847년 다마스쿠스 대지진, 628년 페르시아의 침공과 635년 아랍의 공격 등으로 유적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고 모래에 묻혔다. 그 후 1806년 독일의 탐험가 울리히 야스퍼 제첸(Ulrich Jasper Seetzen)에 의해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1925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이 진행되어 모래 속에 묻혔던 제라시의 유적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지금의 모습이 번영했을 당시의 2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과거의 영화로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성경의 4대 복음서는 모두 그리스의 고대 언어인 헬라어로 쓰였는데, 여기서 제라시는 헬라어로 ‘게라사인들의 지방’, ‘게라사인의 지역’으로 기록됐고, 이슬람 지배 때부터 이곳을 ‘제라시’라고 명명하였다. 해발 600m에 있는 제라시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와 비견할 만해, 이곳을 ‘중동의 폼페이’라고 부른다. 유적지 안에는 하드리안 문, 제우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전차 경기장, 원형극장, 타원광장, 목욕탕, 시장터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발굴돼 있다.
3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제라시 여행은 유적지 남쪽에 서 있는 하드리안 문에서 시작한다. 이 건축물은 서기 129~130년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제라시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2005년에 복원을 시작해 2007년 높이 21m, 길이는 37.45m, 너비는 9.25m로 된 3중 아치형의 문을 복원하였다.
하드리아 문을 통과해 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왼쪽으로 1만 5000여 명이 관람할 수 있는 전차 경기장이 나온다. 길이 245m, 폭 52m나 되는 경기장에서는 전차 경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경기가 열렸고, 관중석은 지금의 규모보다 30배나 컸다고 한다. 이슬람 왕조가 이곳을 지배했을 땐 경기장에서 폴로 경기를 즐겼던 흔적도 남아 있다.
다시 왼쪽으로 전차 경기장을 끼고 앞으로 더 나가면 56개의 돌기둥이 둘러싼 타원광장이 눈앞에 멋지게 펼쳐진다. 각각의 돌기둥은 4개의 블록을 쌓아 올렸고, 기둥의 양식은 모두 이오니아식으로 장식됐다. 이 광장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열주 거리로 이어지는데, 그 길이만 해도 800m나 된다. 제라시의 중심도로인 카르도 막시무스 거리를 중심으로 과거엔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대개 로마와 로마 식민도시에 건설된 도시들의 특징은 넓은 중심거리가 있고 양옆으로 상가 그 뒤로 일반 주택들이 들어선 구조이다. 터키 에페소의 아르카디아 거리, 시리아 팔미라의 데쿠만누스 막시무스 거리, 이탈리아 폼페이에 있는 카르도 막시무스 거리와 데카마누스 막시무스 등도 다 마찬가지이다. 다만 폼페이는 중심거리를 따라 상가와 주택들이 현재에도 남아 있지만, 터키와 시리아 그리고 제라시의 중심거리에는 일렬로 선 돌기둥만 남아 있고, 주변의 건물들은 거의 다 파괴된 상태이다.
타원광장과 수많은 돌기둥 사이로 걸어 오르면 제라시에 남아 있는 대성당이 나온다. 원래 이곳은 디오니소스 신전이 있었는데, 그 위에 지은 것이다. 성당 안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의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는 최초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포도주를 채웠다고 한다.
제라시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면 흥미로운 구조에 놀란다. 대개 로마 유적지에서 가장 큰 신전은 제우스에게 봉헌한 신전이다. 하지만 제라시는 제우스의 딸인 아르테미스 신을 수호신으로 삼았다. 그래서 제우스 신은 타원광장 근처에 지었고, 규모도 아르테미스 신전보다 훨씬 작다. 150년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때 건축된 아르테미스 신전은 12개의 기둥 중 11개의 기둥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12세기 십자군 원정 때 신전은 불에 탔고, 앙상하게 기둥만 남았던 것을 1930년대 클라렌스 스탠리 피셔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마지막으로 제라시에서 꼭 가봐야 할 건축물이 원형극장이다. 아르테미스 신전보다 그 이전에 건축된 원형극장은 3000여 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규모이다. 로마 원형극장의 전형을 보여주듯이 이곳도 무대 한가운데서 큰 목소리를 내면 마이크도 없이 극장 맨 위쪽까지 잘 들리게 설계되었다. 특히 극장 계단 맨 위로 올라가면 발아래로 타원광장과 열주 거리 그리고 주변의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원형극장에서는 현지인 3명이 북과 백파이프 연주로 여행자들의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극장 맨 꼭대기에 앉아 이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저 멀리 보이는 타원극장의 돌기둥과 그 뒤로 펼쳐진 유적의 아스라한 영화로움이 새롭게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