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전사들의 삶, 영웅에 걸맞는 존중이 필요
코로나 19 전사들의 삶, 영웅에 걸맞는 존중이 필요
난세영웅(亂世英雄)이란 말이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다. 코로나 19가 휩쓸었던 올해는 그야말로 난세였다. 거리에는 온통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로 메웠다. 한창 공부하고 뛰놀아야할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집구석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아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했다. 언택트(untact)라는 낮선 용어가 우리 곁에 자리한 것도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스포츠의 열기가 넘치던 운동장이 문을 닫았고, 문화공연장도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이 멈췄고 경제도 사회도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와의 전쟁이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등장했다.
난세여서 그랬을까? 온갖 미디어들은 앞 다퉈 코로나 19 영웅을 만들어냈다. K-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그들이 영웅이라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그들은 이 시대 우리사회의 영웅이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진의 노고를 칭송하는 ‘덕분에’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 의료진의 이마에 흉터처럼 새겨진 선명한 고글 자국은 ‘코로나 전사’들의 노고를 칭송하는 의미에서 ‘영광의 상처’로 불렀다. 하지만 정작 의료진들은 “영광과는 거리가 먼 상처”였다고 말한다.
영웅에 걸맞는 대접을 하지 못한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는 백서 한권이 최근에 출간됐다. 시민건강연구소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최근에 펴낸 <보건의료노동자, K-방역을 말하다: 더 나은 팬데믹 대응을 위한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250페이지에 달하는 백서에는 다양한 직군의 보건의료 종사자 24명의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뿐 만 아니라 의료영상기사, 요양보호사, 간병인, 바이러스에 오염된 의료 폐기물을 처리하는 미화노동자 등 방역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를 보낸 분들의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가장 높은 감염 위험에 노출된 채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삶은 어땠을 까.
백서에 따르면 보건의료종사자들은 방호복 입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보호구 자체가 불량이었던 것, 보관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의 고글 등을 착용하면서 얼굴에 상처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걸 모른 채 우리는 ‘영광의 상처’라는 말로 그들은 위로했다.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병원의 체력 단련실이나 장례식장에서 잠을 자며 환자를 돌봤다고 한다. 한 여름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방호복을 입고 한 생명이라도 살리겠다며 하루 종일 감염 위험이 노출된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그들이 병원 한 구석에 잔뜩 움츠려 쪽잠을 잤다는 이야기엔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사회와의 단절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주변의 눈초리도 차가왔다. 코로나 19 진단검사를 담당했던 A씨는 장인으로부터 “웬만하면 처가에 오지 말라고, 오면 보건소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웃고 넘어갔지만 코로나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마음이 지치고 힘들다했다. 간호사 B씨는 “할머니 49제라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에도, 제가 가면 다 불안해하니까 가지 않았다.”고 한다. 간병인 C씨는 “코로나를 옮길까봐 퇴근해 집에 가는 길에 물건하나 사러 가게에도 들르지 못했다.”고 했다. 감염 의심증상이 나타나도 진단검사조차 제때 받지 못했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 전파자가 되지 않기 위해 수개월씩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병원 안에 있는 동료조차와도 격리된 상태이다.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삶의 연속이다.
의료진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일부 환자들의 태도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도 했다. 배달된 음식이 맛없다는 불평에서부터 심지어는 환자가 프랜차이즈 커피를 사오라고 간호사에게 시켰는데 감염병 관리 원칙상 어렵다고 했더니 서울시에 민원을 넣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새벽 배송택배를 요구하는 환자도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자료를 보면 10월5일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된 보건의료 인력은 159명이다. 간호사가 101명으로 가장 많았고, 간호조무사 33명, 의사 11명, 방사선사·물리치료사 등 기타 인력이 14명으로 집계됐는데 의료진의 감염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만큼 코로나19와 관련된 의료진은 심각할 만큼 감염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백서는 사회적으로 의료진의 노고를 칭송하는 ‘덕분에’ 등 다양한 캠페인이 벌어졌지만 병원 안에서는 코로나19 병동 인력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코로나19 대응 인력을 ‘코로나 전사’, ‘영웅’이라는 순간적이고 표피적인 표현보다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역설한다.
유럽 지역과 북미는 이미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들린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급증세를 잘 막아내고 있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2차 대유행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코로나 19 상황은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힘이 들고 어려운 건 여전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봉사하는 코로나 19 의료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영웅적인 삶에 온 국민이 응원하고 더 좋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도 시급하다.
<김건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