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첫 근대식 병원

제주한라병원 2020. 10. 28. 11:31

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30> 도립병원1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첫 근대식 병원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꾼다. 아니 바꾸어놓았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정말 바꾸어놓았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질병과 싸워왔다. 오죽했으면 질병에 악마를 붙여 ‘병마’라고 했겠는가.


콜레라가 전 세계적인 질병으로 등극한 건 19세기였다. 세계화의 물결은 질병도 공유하게 만들었다. 19세기 콜레라는 인도를 시작으로, 미얀마, 중국 등을 거쳐 한반도에 다다른다. 그때가 1821년이다. 이듬해엔 바다 건너 제주도에도 콜레라가 번진다. ‘질병의 세계화’라고 해야 할까. 사람의 잦은 이동은, 보다 빠른 이동은 질병의 확산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세기 콜레라가 세계를 정복하는데 수년이 걸렸지만, 이젠 금세 퍼진다.


세균과 바이러스와의 싸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을 병원에 기대게 만든다. 제주의 병원이라면 어른들의 기억 속엔 ‘도립병원’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제주의료원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제주의료원’보다는 ‘도립병원’이 더 익숙한 입말이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옛날은 가고 없다.


제주의 근대식 의술 도입은 공교롭게도 일제강점기와 함께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거는 이들에겐 최적의 양념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일제강점기가 오지 않았더라도 제주에 근대식 의술은 도입되었을 테다. 다만 시기의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조선 고종 때인 19세기 후반에 첫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나중에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뀜)이 설립되었다. 제주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같은 근대식 병원은 세워졌을 텐데,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 일제식 병원이 제주도 첫 근대식 병원이 되고 만다.


그 병원은 제주도립병원으로, 제주도립병원에서 제주의료원으로 이름을 갈아타게 된다. 제주도립병원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판관 등이 집무를 보던 ‘이아(貳衙)’에 자리를 잡았고, ‘자혜원(자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 자혜의원  (사진은 제주시에서 발간한 <제주시의 옛터>에서 발췌)

 


‘자혜(慈惠)’는 이름에서 보듯 뭔가 베푸는 모양이다. 베푸는 대상이야 뻔하지 않은가. 일제, 그들이 식민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베풀어준다는 의미였다.


1924년 전라남도제주도청이 엮어 만든 <미지의 보고-濟州島>를 훑어보면 그들이 베푸는 자혜는 문명이고, 제주도민들은 반문명으로 읽힌다.


“도민의 생명은 의술의 소양이 얕은 의생의 손에 맡겨졌고, 민간인들은 극히 무지하여서 하등의 근거도 없는 미신에 의해 환자를 다루어왔다. (중략) 합방이래 각 도에 자혜병원을 배치토록 한 결과 본원도 개원을 한 이래 10여년의 성상을 거쳐 문명적인 의술을 베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 요법이나 민간의 미신적인 요법이 여전히 세력을 부리고 있는 것은, 필경 교육의 소양이 모자라는 탓으로 위생이라든지 보건이라든지 질병에 대한 참다운 이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에서처럼 서양의학에 대한 무지의 탓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당시엔 보건위생 업무를 경찰이 관장을 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근대식 의술을 꺼려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미지의 보고-濟州島>가 만들어질 땐 자혜의원의 위상도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책자가 만들어지기 4년 전인 1920년엔 제주도에 콜레라가 기승을 부려서 무려 4134명의 목숨을 앗아간 터였다. 자혜의원 하나로 콜레라를 감당할 처지도 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은 코로나19로 수만명의 목숨이 떨어져나가는 유럽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제주도립병원의 탄생을 좀 더 살펴보자. 첫 이름이던 제주자혜의원은 1912년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27년 전남도립제주의원으로 이름을 바꿔 달면서 개축공사가 이뤄진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아’ 터에 세워진다. 제주목관아는 관덕정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었고, 관덕정 남쪽은 이아 차지였다. ‘이아’는 ‘제2의 관아’라는 의미이다.

 

 

△ 옛 제주도립병원 모습 (사진은 제주시에서 발간한 <제주시의 옛터>에서 발췌)

 


기록을 들여다보면 제주자혜의원은 1937년 개축공사가 진행되었다고 나온다. 건물이 참 보기 좋았다. 그 건물에 대한 기억을 지닌 사람은 많다. ‘자혜’라는 이름을 단 병원은 침탈의 한 수단임에 분명하지만 건축물이 사라지는 아쉬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 건물은 1997년 헐리는데, 일제강점기 때 근대건축물에 대한 가치를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건축물에 60년 수명은 너무 짧다. 당시에도 드문 철근콘크리트 구조였는데, 좀 더 넓혀서 쓰겠다는 이들 앞에선 남아날 건축물이 없는 셈이다.


사람들의 뇌리 속에 ‘도립병원’이라는 각인이 남는 이유는 ‘자혜’라는 이름의 역사가 너무 짧은 탓도 있다. ‘자혜’라는 이름이 붙은 시기는 1912년부터 1927년까지였으니, 고작 15년의 역사였다. 나머지는 도립병원으로 줄곧 불리었기에 다른 이름을 달았어도 ‘도립병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탓할 이유가 사라진다. 지금도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겐 ‘도립병원’이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