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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토트의 書’만 주면 떠나겠다고 했지만…

제주한라병원 2020. 9. 10. 14:41

이집트 이야기 - 토트의 서(書) ②

 


왕자는 ‘토트의 書’만 주면 떠나겠다고 했지만 …




마법의 비밀이 담겨 있는 ‘토트의 서(書)’를 찾겠다는 열망으로 아버지 람세스 2세의 허락을 겨우 얻어 조상의 무덤 속에 들어간 세트나 왕자. 공기가 희박해 꺼질 듯 말 듯 흔들거리는 횃불을 들고 무덤 속으로 나아가는데, 안쪽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물체가 ‘푸다다닥’하며 세트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박쥐다!” 세트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수없이 많은 검은 박쥐들이 한꺼번에 세트나의 머리위로 날아 지나갔다. 그가 박쥐를 피해 몸을 구부리는 순간 들고 있던 횃불이 땅에 떨어져 꺼져버렸다. 순식간에 무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꼼짝없이 무덤에 갇혀버린 세트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 조용히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시간과 공간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우주의 한복판에서 미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던 그는 손으로 무덤 벽을 더듬으며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얼마나 안으로 들어갔을까. 저 멀리 무덤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물체가 보였다. 불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 보니 무덤의 현실(玄室)이 나타났다. 희미한 광채는 현실 안에 있는 토트 신의 마법서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현실 안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고대의 왕자 네페르카프타의 미이라가 눕혀져 있었다. 미이라는 여러 겹의 린넨 천으로 싸여 있고 얼굴은 황금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침대 옆에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는데 하얀 꽃과 같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 아래에는 작은 아이가 누워 있었다. 

세트나가 현실 안으로 들어가자 여인은 왕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왕자의 출현에 놀라는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세트나, 너는 왜 죽은 자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냐?”

세트나는 그 여인이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인 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마도 그 아름다운 여인은 네페르카프타의 부인일 것이었다. 여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그는 한 번 더 현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 방에는 온갖 보물이 가득했다. 섬세하게 세공된 탁자 위에는 보석이 박힌 옷들과 상아로 만든 물건들이 즐비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세트나의 시선이 작고 둥근 탁자에서 멈추었다. 탁자 위에는 두루마리 책이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신이 찾고 있던 토트 신의 마법서였다. 세트나는 여인을 향해 말했다. “미안합니다, 부인. 저는 당신들의 휴식을 방해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오로지 저 책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제게 저 책을 주시기만 하면 당장 여기를 떠나겠습니다.” 
 
“내 남편의 책을 너에게 함부로 줄 수는 없다. 토트 신의 마법서는 나와 내 남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듯이 너에게도 오직 슬픔과 불행만을 안겨줄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카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에게 그 책을 주세요. 저는 그 책의 마법을 이용해 이집트를 부강하게 만들 작정입니다.” 세트나는 단호하지만 정중하게 부탁했다.

“세트나 왕자!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기 바란다.” 아름다운 여인은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의 이름은 아흐웨레이다. 네페르카프타와 나는 파라오 아메넴헤트의 자녀들이었다. 오빠와 나는 왕실 관습에 따라 결혼하여 아들 메랍을 낳았지. 나의 남편도 너와 비슷했다. 고대의 문자들을 읽고 신기한 마법을 배우기를 좋아했어. 어느 날 남편이 신전 성소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읽고 있는데 한 제사장이 나타나 조롱하듯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은 하찮은 것이랍니다. 나는 지혜의 신 토트가 직접 기록한 마법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요. 그 첫 장을 읽으면 바다와 산에 마법을 걸 수 있고, 새와 짐승들과 파충류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소. 두 번째 장을 읽으면 두 눈으로 신의 비밀과 감춰진 비밀도 알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했다더구나.”     (계속)